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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평점 :
두꺼운 책들이 머리맡에 즐비하다. 너무 많은 책들을 동시에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일부러 일곱 권 이내로 볼 책을 정리하고 나머지 책들을 책장 높은 곳으로 옮겨 버렸다.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옮겨지지 않고 내 곁에 남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역시 그림이 있는 책, 만화, 자수나 옷 만들기, 드로잉에 대한 책, 나무나 풀, 새 이야기 들이다.
가끔 옷도 만들고 뜨개질하는 것도 좋아하며 드라마를 틀어놓고 수놓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여유로울 때 하는 일들이고 대개는 의무감으로 채워진 시간들로 바쁘다. 집안 일, 직장의 일, 그리고 어렵고 무거운 책들을 읽고 정리하는 일, 영어나 스페인어 공부... 오해는 마시라. 이런 일들은 내 생존이나 생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들이다. 아무도 내게 어려운 철학책이나 과학책을 읽으라 강요하지 않으며 실력이 늘지도 않는 영어 공부나 스페인어 공부는 사실 앞으로 써먹을 일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그런 묵직한 일을 해야 열심히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가 보다, 나는.
그런 와중에 짬을 내어 그림을 그리고 옷을 짓고 수를 놓을 때 가장 행복한 나를 발견한다. 뜨개질도 참 좋아하는 일이지만 몇 년 전 남편의 모자 몇 개를 뜬 이후 거의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러면서 뜨개실도 만지작거리고 오래 전 아이들 어렸을 때 떠 입혔던 스웨터를 꺼내 품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그래! 이 책은 나를 들뜨게 하고도 남았다. 다른 이가 뜨개질하는 이야기로 대리만족을 느끼고도 싶었다! 이 책을 읽다 잠든 날들이 참으로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게다가 아일랜드의 삶을 사는 글쓴이의 이야기는 이국의 풍광과 삶의 경험까지 들려준다.
다만, 그이의 뜨개질 솜씨는 나같은 범인이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뜨개질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토록 몰입하고 이토록 발전하며 이토록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든다고? 그렇다면 글쓴이는 완전 몰입형 인간이거나 뜨개질에 타고난 이이거나 둘 중 하나다. 게다가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다니!
그이의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함뜨(온라인을 통해 함께 뜨개질하는 일)’ 이야기였다. 온오프 세계의 장점을 잘 버무린 이 연대의 힘은 참 아름답다. 문어발 이야기도 재미있다. 새로운 열정으로 새 작품을 뜨기 시작하며 일을 벌려놓는 것.
나는 아이들이 어려 가장 바빴던 시절에 한창 뜨개질에 몰두했던 적이 있다. 딸아이가 네 살, 다섯 살 때, 아들이 열 살 때 스웨터를 떠서 입혔다. 잠도 모자라던 그 시절의 육아 스트레스를 뜨개질로 녹여냈다고나 할까. 그리고 아이들과 옷 이야기를 하며 알콩달콩했고, 그 옷들은 작품으로 남아 지금도 추억의 대화거리가 되고 있다. 그때 떠 준 옷 이야기를 모티브로 <세상에서 가장 큰 담요> 동화책을 썼다. 돌아보니 눈물과 힘겨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겨준 나의 뜨개질 역사다. 곧 다시 누군가를 위해 예쁜 옷을 떠 보리라. 글쓴이에 기대, 이번에는 솜씨가 훨씬 업그레이드 된 멋진 옷을 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