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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평점 :
이 책은 적당히 지루했고 적당히 아름다웠으며 적당히 위로가 되었다. 읽어야 할 철학서 목록에 넣어둔, 숙제 같은 책이었지만 어떤 말들은 필사를 하고 싶었고 어떤 말들은 외우고 싶었다. 마음이 힘든 날은 이 책을 읽으며 잠들기도 했다. 드넓은 우주에 작디작은 존재로서 나를 인식하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전혀 다른 접점이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느낀 광활한 세계에 대한 이끌림과 더불어 느끼는 무한히 하찮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안도, 그리고 허무하기에 사는 동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성을 <명상록>에서 만났다.
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신의 존재를 확신하지 않으며 그의 스토아 철학적 자세에 공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왕이면서 스스로를 벼리기 위해 쓴 책처럼 보이는 이 <명상록>을 읽으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여기서 ‘너’에게 하는 말은 모두 그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왕으로서 느끼는 교만의 유혹, 권능에의 욕구 따위 앞에 혹독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 인간세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지만 자기 위에 신과 우주를 염두에 두어 오만해지지 않으려 애쓴 한 왕, 고뇌가 깊어 그는 결국 철학자의 명성을 얻는다. 모든 고뇌는 깊어지면 명상이 되고 철학이 될 수밖에 없다.
왕관의 무게를 느끼는 이들은 모두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역사 속에 멋진 왕, 철학자였던 이, 종교에 신실했던 이들이 없지 않으나 그들 중 가장 상징적인 이 사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지금까지도 모든 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여겨야 한다. 제발, 매일 일기를 써라. 당신의 언행이 누군가의 목숨에 비수가 되지는 않았는지, 당신의 오만이 인간들의 삶을 휘저어 우주에 업보를 쌓지는 않는지, 당신의 어리석음이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세상을 핍박하지는 않는지.... 아, 미치도록 좋은 지도자, 생각할 줄 아는 지도자가 그리운 시절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너 자신이라는 작은 영역으로 은신할 생각을 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빗나가거나 긴장하지 말고 자유인이 되어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죽게 마련인 동물로서 사물들을 보라. 사물들은 네 혼을 장악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혼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불안은 오직 우리 안에 있는 의견에서 기인한다.
네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변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너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지 항상 명심하라.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의견이다.
너는 곧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단순하지 못하고, 담담하지도 못하고, 외부로부터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지 못하다. 지혜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너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잊지 말고 다음의 원칙을 적용하라.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이것을 용감하게 참고 견디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행운이다.”
매번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매사를 올바른 원칙에 따라 행하는데 싫증 내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실패하면 다시 그 원칙으로 돌아가고, 네 행동이 대체로 인간 본성에 맞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네가 무엇을 지향하든 그것을 사랑하라.
‘이 세상을 떠나서는 이러저러하게 살아야지’하고 소망하는 대로 이 세상에서도 살 수 있다.
우주의 지성은 공동체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우월한 것들을 위해 열등한 것들을 만들어냈고, 우월한 것들은 협조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우주는 종속시키고, 결합시키고, 각자에게 응분의 몫을 주었으며, 탁월한 것들은 서로 화목하게 해놓았다.
운 좋은 사람이란 스스로에게 좋은 운을 가져다준 사람이고, 좋은 운이란 혼의 좋은 성향, 좋은 충동, 좋은 행동이다.
맛 좋은 요리나 음식을 보고는 이것은 물고기의 사체이고 이것은 새나 돼지의 사체라고 생각하라...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보라.
인생에서 아직 육신이 굴복하지 않고 있는데 혼이 먼저 굴복하는 것은 치욕이다.
각자의 가치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의 가치와 일치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만물은 서로 얽혀 있고 그 유대는 신성하다. 서로 낯선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똑바로 서라, 아니면 똑바로 세워져야만 할 테니까.
육신은 단단해야 하고 움직일 때나 정지해 있을 때 일그러져서는 안 된다. 마음이 현명하고 점잖은 표정을 유지함으로써 얼굴 표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우리는 육신 전체를 위해서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식 없이 행해져야 한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되 흥분하지도 나태하지도 위선자가 되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다.
말할 때 적절하고 명료하게 말하라. 건전한 표현을 사용하라.
슬픔이 나약함의 표시이듯, 분노도 나약함의 표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