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 책 읽는 고래 : 고전 5
진은영 글, 김정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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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대충 읽었지만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니체가 어떤 시대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해도 그의 작품들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 심오해서일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화에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하긴 철학자들이 대중의 이해를 구하지는 않더라만). 절박함에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새삼 예수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심오하든 신비롭든, 비이성적이든 그는 대중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이야기꾼이다는 것. 니체의 모호함은 어쩌면 유럽의 문화전 전통 혹은 기원일 수는 있겠지만 예수같은 설득력은 갖지 못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 전 지구적 삶의 근원이 된 유럽 정신에서 매우 중요한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 이해고 나발이고를 떠나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헛소리를 지껄인 병약하고 사회성 없었던, 자의식 과잉의(그래, 내가 그의 저서를 온전히 읽기 이전에 칼 융이 쓴 <칼 융,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를 먼저 읽은 게 잘못일 수도 있다. 융은 니체를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분석심리학적으로 그가 자의식 과잉이라고 보았다), 글빨은 좀 있는 그런 관종....은 아닌가 싶었던 사람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정신적 영향을 끼쳤다지 않은가.

 

요즘 한참 잘 팔리는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주인공인 시인 진은영. 베스트셀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예외 없이 이 책을 구입해 읽고 있다. 좋은 시들이 많다. 세월호를 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사랑스러운 시집. 그러나 한국에서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 시집의 선방이 과연 작품만의 힘일까 의심스럽긴 하다.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그이가 철학해설서를 썼().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니체를, 그것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서? 오래 전에 상담실에 구입해둔 책을 왜 이제 읽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책은 운명처럼 자주 나를 부르곤 하는데 이번에도 상담실 서가를 정리하다 이 책이 나를 부르는 바람에 다시 손에 넣고 읽게 되었다. 너 요즘 니체를 뒤적인다며? 니체 원서는 난해하지만 남들이 해석해놓은 니체를 더러 찾아 보았다며? 그리고 진은영도 읽는다며? 그럼 이 책은 어때? 너의 천둥벌거숭이 남중딩 제자들이 이 책을 읽을 일은 별로 없을 거야. 대신, 네 수준에 딱 맞을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함 읽어보렴. 이러면서.

 

그리고 결론. 이 책은 놀랍다! 나는 진은영이란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니체가 이토록 쉽게 이해가 되며 심지어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니! 뿐만 아니라 그들이 니체를 읽을 일 없을지라도 이 책을 나의 제자들에게, 아니 어린이들에게도 읽히고 싶어졌다, 그저 이 책을 읽는 일만으로도 어린 그들에게 뭔가 깊이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어린 자녀와 제자에게 삶의 자세와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싶은 어른들,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과 성찰을 위한 독서가 필요한 어른들도 이 책을 읽으시라.

 

그간 오해했던 니체에 호감이 생기게 된 대목이 여럿 있다. 가령, 우리 사는 세상의 요란법석함을 니체는 매우 사랑했단다.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한다(세상은 아이들의 놀이터 같은 것). 사람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대립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니체는 말했단다. 그가 현대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람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 기질과 그가 주장한 아모르 파티는 일맥상통한다. 니체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요즘의 잣대로 평가할 사람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현실을 즐기는 발랄한 진보의 가치관과 접점이 있어 보인다.

 

그가 말하는 위버멘쉬, 강한 자는 니체에 대한 흔한 오해처럼 강인하고 초인적이고 뛰어난 어떤 영웅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면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 돈이든 명예든 이념에든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현대는 개인의 자유가 극강에 이른 듯 보이나 자본주의라는 사슬에 스스로 노예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거짓 자유의 시대이기도 하다. 하긴 어느 시대나 신이든 신념이든 돈이든 인간은 어딘가에 매여 살았지 진정한 자유를 누린 적이 있던가. 아니 앞으로는 있을 것인가. 자유롭지 못해야 평화로운 게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내가 누군지 고민하고 자유로워지려 몸부림치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귀엽지 않은가). 그 선봉에는 늘 철학자들이 서 있었다. 니체처럼 목소리 높여 외쳤던 연사는 실제 사람들을 자유로 이끌었든 아니든 사랑받고 존경받고 염두에 두어졌던 거다. 매력적인 인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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