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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힘 -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
스티븐 리츠 지음, 오숙은 옮김 / 여문책 / 2017년 9월
평점 :
책을 읽다가 지은이 자신이 테드(TED)에서 강연한 이야기가 나와서 영상을 찾아보았다. 지은이처럼 열정적인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심지어 그의 목소리와 몸짓도 볼 수 있다니 더욱 궁금할 수밖에. 기립박수까지 받았다고 저자가 은근히(?) 자랑을 하는데도 그 영상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그의 이름 ‘스티븐’이라고 한국어로 치면 찾지 못한다. stephen이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열정적인 스티븐 선생님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열정적이다 못해 부잡스럽게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천진한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열정과 기쁨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여러가지 좋은 의미도 있겠지만 열정과 순수한 호기심, 진정한 기쁨을 잃거나, 적어도 표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티븐 선생님에게는 아이들과 하는 모든 일이 즐겁다는, 기대가 된다고 믿는 순수한 열정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과 학생들이 함께 하는 일들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천진하기만 한 열정 덩어리가 아니더라는 말이다.
저자의 열정을 짐작케하는 대목 중에는 본인이 학교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괜찮은 지도자를 따라 학교를 옮겨 다녔다는 부분이 있다. 관리자와 교사는 다르다. 각자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는 별로지만 관리자로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리고 학교 행정은 분명 중요하다. 좋은 교사와 좋은 활동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행정과 예산은 꼭 필요하니까. 다만 우리의 현실은 프로그램이 좋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이롭다고 해서 거기에 설득될 만큼 교육철학이 훌륭한 관리자가 많지 않다는 것, 아니, 관리자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보통 이런 책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따라 할 구석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엔 그는 너무 많은 일을 했고 너무 열정적으로 살았다. 나도 뭔가 다른 선생님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리츠 선생님처럼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던가,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학업에 다가가는 ‘기술’을 지녔던가 돌아보아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의 제자들은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기에 나의 다가감에 고마운 마음으로 호응했지만 그 모든 다가감이 아이들을 즐겁게 했거나 아이들이 변화시켰던 건 아니었다. 그게 당시에는 기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게 학생들과 나 사이에 거리두기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들 삶에 깊이 들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그게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어쩌면 결과적으로 더 바람직한 것일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스티븐 선생은 이것저것 잘 해냈고 열심히 했지만 그보다 더욱 그가 훌륭한 것은 ‘학생들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점도 칭찬해야겠다. 다음은 스티븐이 학생들과 한 약속이다. 이런 약속을 먼저 정해놓고 새학기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단, 우리나라 학교에서처럼 ‘수업 종 치기 전 자리에 앉아 있자. 친구를 놀리지 말라, 이런 것 말고-물론 그런 약속도 필요하긴 하다. ^^-)
교사의 교실 속 합의안
일일 활동 주제, 입구 활동, 출구 티켓을 제공하겠다.
어떤 학생이 묻는 어떤 질문에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답하겠다.
여러분을 품위 있게 대하고 존중하겠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고 언제든 여기서 여러분을 돕겠다.
학생들의 합의안
언제나 우리 생각이 눈에 보이도록 하겠다.
우리는 모두를 비록 괴로울 때도 존중하고 사랑하겠다.
과제 내용을 확실히 주지하겠다.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겠다.
이해되지 않을 때는 질문을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발견한 문구 중에 꼭 되새기고 싶은 것이 있다. '포용력이 판도를 바꾼다'. 품이 넓은 사람만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품을 수 있고 해보게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관리자이거나 책임자, 선생, 어른이라면 더더욱 그의 포용력이 아이들을 달라지게 하고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진짜 어른은 호통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