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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ㅣ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인가 이토록 무서운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었던 사람은...
살충제로 예쁜 새들이 죽고 풀들이 사라지며 결국 사람의 목숨도 위협한다, 라는 이 간결한 주제를 이렇게 길게, 이렇게 자세하게, 이토록 세밀하고 치밀하게 이야기하다니......
레이철 카슨은 때로는 가차 없는 팩트가 가장 서늘하고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널리스트로서 그걸 입증한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레이철 카슨은 과학으로 그걸 해냈다. 게다가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우리에게도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리아 포포바나 칼 세이건, 레이철 카슨처럼 뛰어난 문장력으로 과학을 말하는 이들이 부러운 게 사실이다. 한국에는 이과생들이 문과생을 무시하는 문화가 있다. 과학의 위대한 업적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과학 공부하는 이들이 인문학적 소양과 문학적 능력을 갖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갖출 필요가 없다는 태도, 문학을 비논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는 태도... 뭐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나는 문학의 위대함을 가슴 깊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과학은 과학대로 자기 역할이 있음을 존중한다. 그것은 각자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또한 서로 기본을 갖추려는 노력도 필요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과학에 무지한 인문학도가 그걸 자랑으로 여길 수 없듯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과학도들도 그게 하찮은 학문이라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위대하고 꼭 필요하다. 서구의 많은 과학자들이 가슴에 사랑과 감성을 품고 사는 일을 자랑스러워했으며 때로는 자신의 문학적 지식, 소양을 과학의 대중화에 잘 활용하며 살았던 일을 생각하면 그런 풍토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토양을 바탕으로 레이철 카슨 같은 이가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살충제가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것의 무한한 연대책임에 대해서는 솔직히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현실에서 살충제를 피하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머리로만 대충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이 쓰인 1950, 60년대의 미국과 지금의 한국은 많이 달라졌을 터이고 이 책에 쓰인 내용이 지금에도 여전히 다 진실 혹은 과학적 사실이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터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살충제가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교란시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 중심으로 지구의 생태가 돌아가는 게 맞느냐는 근원적인 질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는 공존의 방법은 모색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책 속에는 많은 새들과 물고기, 식물들이 등장한다. 내가 모르는 생물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어떤 동식물은 이미 지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구나, 잠시 상상을 해본다. 지금도 많은 동식물이 영영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 하고 그 대부분의 원인을 인간들이 저 살자고, 아니 몇몇 인간들이 저만 잘살자고 하다가 제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참 안타깝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몇 돈 많은 이들을 위한, 그 근방 어딘가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뭔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소수의 인간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다.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 피해에 시달리고 그보다 더 많은 동식물들이 생명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몇 사람들이 잘먹고 잘살겠노라고 뿌려대는 살충제 때문에. 아니, 이렇게 말하면 공범인 주제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은 이에 책임이 없지는 않으므로. 더 싱싱하고 더 큰 채소와 과일을 탐했던 나, 벌레를 혐오하고 좋아하는 동식물만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즐기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모두 공범일 수 있으니.
적어도 이제는 비행기로 사람들이 사는 농가와 숲에 DDT를 뿌려대는 시대는 아니라 안도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점점 덜 위험한 제초제, 살충제, 영양제를 사용해 농사를 짓는다고는 한다.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나마 여기까지 오는 데 레이철 카슨이 엄청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 문학은 힘이 세다라는 말은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가장 위대한 과학과 문학의 만남이었다고 말해 보리라. 그리고 그녀의 위대함에 감사를 표한다. 아니, 그보다 더 큰 감사를 그녀의 용기에 바치는 바이다. 책에서 읽은 내용 중 기억해야 할 것들만 아래에 추려본다.
살충제 등을 뿌린 후 그 성분이 사라진 후에도 폐기된 화학물질이 햇빛 공기 물 등과 함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냄.
호수 자체에 뿌린 DDD성분이 사라져 버려도 그 주변 물고기, 새, 개구리 등 동물들 몸에는 그 살충제 성문이 농축됨.
살충제를 쓰면 미생물, 지렁이, 진드기, 톡토기 등도 죽게 됨.
제초제 2,4-D 등은 뿌리는 사람들을 심각한 신경염이나 마비로 고생하게 만듦.
제초제가 뿌려진 직후 가축들은 독성이 있는 목초에 이끌리는 이상한 식욕 때문에 죽음에 이르기도 함.
제초제를 뿌리면 또 다른 잡초가 갑자기 늘어남.
지렁이도 체내에 살충제가 축적되고 농축됨. 살충제를 뿌리면 이 과정에서 많은 지렁이가 죽지만 살아남은 지렁이는 ‘생물학적 증폭기’ 구실을 함.
새는 해충 억제에 중요함. 그런데 살충제는 해충뿐 아니라 새들도 함께 죽임.
살충제 살포 2주 후 소, 염소, 말, 닭, 새 등 야생돌물들까지 신경계에 치명적 문제가 발생함.
우유에도 잔류농약이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