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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샵
피넬로피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8월
평점 :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면 문학을 쓰지도, 읽지도 않겠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공감의 아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속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최근엔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때문에, 가까이는 학교에서 만난 힘든 가정의 학생들 때문에, 그리고 나의 식구들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늘 마음이 힘들다. 무심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타고난 기질 때문에 그럴 수는 없음을 잘 안다.
심지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소설 속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는 일이 힘들어서 그런 적도 많다. 이 책 <북샵>을 다 읽고는 주인공 플로렌스의 실패와 상실이 내 일인 양 느껴져서 많이 힘들었다고 여기에 고백하는 바이다.
화가 났다. 이런 결말의 소설은 처음 보았다. 이렇게 주인공이 모든 걸 잃고 떠날 때 그래도 곁에 누가 남았다든지, 새로 갈 데가 있다든지, 하여간 숨 쉴 구멍은 남겨놓고 소설을 끝맺지 않나? 그런데 플로렌스는 서점도 책도 다 잃었다, 이렇게 끝나버리니, 참... 그래, 현실은 부조리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불의한 일이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견딜 수가 없다. 운명이나 신, 업보든 뭐든 그들의 슬픔과 나의 안타까움을 달래줄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외치고 싶다. 그래도 소설은, 어차피 허구니까,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의무도 있지만 그래도 문학으로나마 독자를 위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태원 참사 때문에 이 세상에 화를 내고 싶은데 이 소설마저 이렇게 나를 화나게 한다.
사서 선생님이 괜찮은 영화를 발견했다고 말씀하시고 얼마 후 또, 그 영화가 책으로 나왔다고(사실은 책이 먼저고 영화가 나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출간이 그리 됐다는 뜻이다) 내게 권했다. 영화의 결말은 일말의 희망을 보게 해준다면서, 물론 결말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은 채. 내내 그, ‘그래도 남은 희망적인 결말’을 기대하고 읽은 내게 책은 허무한 결말을 안겨주었다. 아무래도 영화를 찾아보아야겠다. 그래야 이 섭섭함이 조금은 가시겠지.
영화는 소설과 조금은 다르다. 그 ‘조금’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를 만든 이 역시 나처럼 책의 결말이 너무나 아쉬웠던 게다. 그래서 마지막을 살짝 비틀고 덧댐으로써 독자들의 허무한 가슴을 달래주고 싶었나 보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그 이상한, 몰철학적이고 이중적인 태도가 못마땅한 독자를 위해 박종원 감독이 영화로써 극복의 장치를 마련한 것처럼. 아무리 누천년 인류에게 부당한 일이 거듭될지라도, 그리하여 기실은 그 희망이란 녀석이 별 힘은 없는 존재일지라도, 어쨌거나 그게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미친 듯이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희망이라는 사금파리를 찾아 헤매지 않나. 피츠제럴드는 파격적인 결말로 현실과 자신의 삶을 충분히 반영한 멋진 소설을 썼을지는 몰라도 독자들에게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저 당당한 플로렌스란 여인을 초라하게 만들지는 말아달라. 영화에서 크리스틴이 플로렌스의 염원과 혼을 잇듯,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란 희망을 버리게 하지 말아달라, 저자에게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