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며 박학다식이 죄는 아니잖아?’하는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돈다. 나는 수업을 위해서도, 나의 흥미를 위해서도 박학다식의 욕구를 채워주는 책들을 좋아한다. 이 책은 중학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체로 쓰였을 뿐 아니라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식재료 식물과 중학교 수준의 영양소 이야기나 역사 이야기(어쩌면 약간 야사가 아닐까 싶은 에피소드들도 나온다)로 구성돼 있다.

 

감자나 옥수수의 역사는 흥미로웠다. 식물은 인간에게 먹히지만 가축처럼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이 길들인 것이 아니라 그 식물들이 인간을 길들인 것일 수도 있다는 시각도 흥미롭다. 세상에는 너무나 맛있는 식재료 식물이 넘쳐난다. 특히 잎채소를 좋아하는 나는 자연이 준 풍요에 대해 진심으로 경이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 책은 그런 식물들이 어떻게 인간과 어우러지고 싸우고 버티고 여기까지 왔는지 보여준다. 때로는 악마의 식물 취급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굶주림과 싸우는 인간 곁을 지키고 때로는 사악한 자본의 현현으로, 때로는 구휼의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해온 벼, , 옥수수, 토마토, 감자 들, 그리고 남편이 너무나 사랑하는 고추와 콩(두부)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겨 있다.

 

나무는 지각 변동으로 기후가 달라지자 오히려 풀로 진화했다는 내용에 무릎을 친다. 경쟁과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커지고 우뚝해지고 많아지는 것만이 진화가 아니란 이야기다. 더 작고 여리게, 쪼개지고 부서지고 낮아지는 어떤 존재야말로 가장 진보적이고 진화적인 것 일 수도 있다. 벼 한 톨이 1000배로 성장하는 것도, 식물과 식물이 어우러지는 것도 라피도포라처럼 공생을 위해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혼자만 잘 살려는 성취의 단계에서 이룬 일들이 아니다. 때로는 그저 살아남는 것, 때로는 자기를 죽이고 다른 존재를 살리는 것, 때로는 지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오히려 진정한 진화라는 것이다. 세상을 좋고 나쁨, 이기고 짐, 성공과 실패로 나눌 일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