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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고양이 : 상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서현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평점 :
<루브르의 고양이>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책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지만 작가의 그림체가 프랑스풍이라서 유학파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루브르 미술관의 공간 구조와 그곳의 그림들에 대해서까지 잘 알고 있는 걸 보면 깊이 경험하지 않고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싶다.
미술관 어딘가에 고양이들이 산다. 그들 중 신비로운 녀석이 하나 있다. 그림들 중에는 존재가 드나들 수 있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으로 사라진 소녀가 있다... 이런 조각들 하나하나도 흥미롭고 아름답지만 그 조각들을 이어 맞춰 개연성을 준 작가의 능력도 놀랍다. 이야기도 놀랍지만 그림도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저 만화라고만 부르기엔 아깝다. ‘작품’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림 속을 들락날락하는 존재의 이야기는 동양적이다. 물론 서양에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그림에 영성을 부여한 작품이 없는 건 아니다. 판타지적인 스토리지만 <모나리자>의 초상을 도둑맞았다 되찾은 전력이 있는 미술관이라면, 현실 세계와 헷갈릴 만큼 정교한 그림들이 저렇게 많은 장소라면, 수많은 사연과 혼을 갈아넣은 듯한 작품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그 그림들 중 하나쯤 살아있는 세상이 있을 법도 하지 않을까? 가장 혼이 맑은 어린 소녀라며, 먼 나라에서 온 것 같은 어린 고양이라면 그 세상을 넘나들 법한 일 아닌가? 소녀와 고양이가 그 그림 속 세계에서 뛰어노는 장면은 범우주적이고 초월적이다. 시간을 괘념치 않는 순정한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교향곡 4악장 말미, 이제 이 음악은 곧 끝이 날 것을 관객들 모두 안다. 감정이 최고조로 이르고 모든 악기가 총동원되어 가장 격정적인 음률을 만들어 낸다. 감동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 이성이 살짝 묻는다. 언제 어떻게 끝나지? 어떻게 이 감동을 흐지부지도 아니고 뚝 떨어지는 허무감도 아니면서 아쉽지 않게 맺으며 억눌렀던 박수를 터뜨리게 하려나? 멋진 교향곡은 저 질문에 항상 아쉬움 없이 답을 해준다.
눈물이 핑 돌 것처럼 아름다운 클라이맥스의 장면을 보면서 도대체 작가는 이 무지막지한 상상을 어떻게 현실로 당겨올 것인가 궁금했다. 작가는 교향곡처럼 그걸 멋지게 해낸다. 어쨌든 현실의 시계를 흘러가는 거니까. 떠난 이는 떠난 거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내가 이 책을 깊이 읽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이번 겨울, 하루 서너 장씩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기를 ‘언젠가 할 일’로 미루다가 본격적으로 집중적으로 해낸 두 달 동안 정말 많은 그림을 그렸다. 주로 원근법과 정교한 드로잉 연습이었지만 이 그림 연습은 언젠가 여행 스케치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나만의 그림 동화나 에세이를 쓰게 할 수도 있다. 희망사항일 때는 즐길 수 있고 그게 목표가 되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지금은 그저 하루 서너 시간,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그림에 몰두하는 시간들이 행복할 뿐이다. 잠들기 전에는 엎드려 <루브르의 고양이>의 한 컷 한 컷들을 작은 스케치에 따라 그려본다. 0.5mm의 가는 펜으로 고양이들을 그리고 세실의 안경 속 속눈썹을 그린다. 루브르 지붕 너머 파리의 숲을 그려본다. 따라그리기는 좋은 공부가 되기에 핀터레스트에서 찾아낸 그림들로 원근법 연습을 하고 거리 스케치를 하면서 좋아하는 선을 만들어간다. 당연히 그림 실력도 늘었지만 잘 못 그려도 상관없다. 그리는 동안 행복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