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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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게을렀다. 시집의 권수가 적은 편까지는 아니라지만 그의 명성에 비해 활동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그를 갈급했던 이들에게 가뭄의 단비처럼 여겨지는 듯싶다. 헤아려보니 그는 지금으로는 이르다 싶은 30대 초중반에 많은 활동을 했고 일찍 주목받았다. 일반적으로라면 40대쯤 이르러 더 많은 명성을 얻을 법도 하건만 이후 그의 활동은 뜸했다.

책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신비주의에 빠져 정신분열증을 앓'으면서 보낸 세월이 제법 긴가 보다. 그리하여 최승자는 몹시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예민한 감성과 영민한 지성에 비해 영악한 사회성은 갖지 않았나 보다. 어떤 시인들은 시 비슷한 것을 적당히 쓰고 자신의 시를 팔아 강연도 다니고 다른 책들도 많이 내고 여행도 다니고, 여행 다닌 이야기를 또 이야기로 만들고 유튜브도 하고 잘들 살던데... 그렇게 사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최승자 당신도 적어도 그 정도 삶은 영위하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살아주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하고 왜 그토록 어둡고 아팠단 말인가...

 

최근 알바레즈 <자살의 연구>와 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그리고 그이의 최근 시집 몇 권을 같이 읽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며칠은 그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지낸 기분이다. 나의 20, 강원도에서 혼자 삶을 시작하던 무렵과 삶에 치여 죽을 것 같이 힘들 때 닳도록 읽었던 시집을 써준 그이, 지금도 아픈 사람들에게 공감으로 힘을 주는 그의 시. 대한민국 시인 중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있을까라고 한 누군가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나의 경험이 그이 시의 진정성을 입증한다. 사람들은 아는 것이다. 그가 아픈 척하며 아픈 시를 썼던 게 아니란 걸. 그는 정말 아팠기에 정말로 아픈 사람들에게 읽힐 수밖에 없었다. 그 진한 진정성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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