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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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말이 칼이 될 때>를 읽고 여러 선생님과 독서토론을 할 때였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고 늘 역사를 공부하며 학생들에게 항상 바른 인성교육을 하는 선생님이 함께 하고 있었는데 그가 대구에서 코로나가 창궐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대구혐오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당해도 싸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대구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가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인과응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약간 놀랐다. 감정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그게 올바른 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친일파이고 일베일 수 없다. 또한 그 집단이 모두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너희가 혐오를 했으니 똑같이 혐오를 당해도 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비슷한 모순은 다른 이야기에서도 나왔다. 늘 학생들을 공평하게 따뜻하게 대하는 좋은 교사인 어떤 선생님이, 자신은 교회에 다니는데 동성애는 정말 나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것은 차별이니 반대합니다.’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스스로의 모순이 괴롭다고도 했다.

사람의 행동이 일관되려면 어떤 사고방식이 철학으로 구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까지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볼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행동은 모순된 점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남자 페미니스트의 글을 읽는 마음은 착잡했다. 남자중학생을 가르치는 여교사인 나는 10대 남학생들의 반페미니즘, 아니, 여성혐오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피부 깊숙이 매일매일 경험하며 산다. 진심으로 깊이 걱정스럽다. 그 날선 반응은 그냥 다수를 점하는 의견이 아니라 반공, 반독재, 반일 투쟁 뭐 이런 것처럼 거의 신념화 단계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주변에서도 페미니즘 논쟁은 수다가 토론으로, 논쟁으로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흔하다. 지하철이나 내 자녀들 주변에서 젊은 남녀 연인들이 이 주제로 다투는 걸 자주 보았고 학교에서는 자기들끼리 페미니즘 어쩌구, 궁금증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욕설로 끝나는 걸 자주 본다. 남중생 중 페미니즘의 제대로 된 개념과 역사를 아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나마 똘똘한 아이들이 페미니즘은 원래 나쁜 뜻이 아니었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변질됐다.’ 이렇게 말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아닌가요?“ ” 이렇게 반문하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리뷰를 살펴보았다. 책이나 영화 등이 흥미진진할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해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요즘 남혐여혐, 페미니즘을 다루는 글들은 영락없이 논쟁적인 댓글들이 달리니까. 심지어 다른 분야에서는 진보적일지라도 페미니즘 이슈에는 기치를 높이들고 싸우려 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치가 떨리게 싫다기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주로)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말할 때, 여성인 우리에게는 이게 목숨을 건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논쟁이 벌어지면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감정적 고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미치겠고 두렵고... 그런데 요즘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운동이 그렇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고 욕을 한다. ? 그렇게까지 페미니즘이 그들의 삶을 위협했나? 두렵고 억울하고 무서운가? 의아하다. 어이가 없다. , 물론 다른 건 있다. 그들은 감정적으로 고양되지만 억울해서 울컥하지는 않는다. (군대 얘긴 빼고)

 

나는 남자들이나 반페미니즘 운동이 한심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는 거다. 누가 더 억울한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은 이런 논쟁 다음 단계에 뭐가 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 그게 안 보여서 답답한 것이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은, 문제제기를 하는 책이고 논쟁을 부르는 책이고 반발하게 하는 책이고 카프카가 말한 대로 도끼로 얼음을 내리치는 것 같은그런 책이다. 알라딘에서 별점테러를 하면서 저주의 리뷰를 퍼붓고 싶을 만큼 강렬한 책이다. 심지어 저자는 아마도 댓글이나 리뷰 테러를 받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여자들이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 많은 남자들이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목조목 반박했으면 좋겠다. “재수없는 페미, 꺼져!”라고 말하지 말고 이러저러 해서 당신 논리는 틀렸다, 라고 반박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리하여 그렇다면 어땋게 할까? 앞으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나와 그 답을 생각해내려고 곰곰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제발, 화는 내도 좋지만 욕은 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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