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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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 종종 미루나무 아래에 서서 팔랑거리는 잎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빠르게 날고 있을 물과 산소 분자를 상상하며 분자들이 우리 눈에 보인다면 굉장하겠다고 생각했었죠. - 신혜우

 

나의 책장에는 나무와 풀, 꽃 이야기가 꽤 많다. 나는 아마도 저 그림들이 좋아서 책을 샀겠지, 사실 생물학적 지식을 얻는 공부를 하려고 책을 구해오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도 여기에 나오는 전문적인 식물학 지식이 다 내게 필요할 리가. 화단에서 자주 보던 고들빼기 비슷한 저 풀이 방가지똥이었다는 것, 겨울에 나는 비슷비슷한 장다리꽃류도 사실은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기쁘지만 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저, 지금 주인공으로 언급된 그 풀, , 나무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들이 좋았다. 은행나무, 넌 좀 외롭겠구나, 하면서 대학시절 우리와 함께 최루탄 냄새를 맡아주었던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사실은 멸종 위기에 놓인 종이라니 늘 너그럽기만 하던 동네 할아버지가 알고 보니 천상계 신선 할아버지였다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든지, 예전에 책에서 읽은 능소화 낭자 전설이 괜히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싶었다든지, 자취방 벽에 붙여놓은 시 속의 떠다니는 개구리밥이 사실은 알고 보면 지구를 살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책 속의 그림 몇은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애기장대나 강아지풀의 그 작은 꽃봉오리를 그리다 보면 살짝 정신줄을 놓는다. 그림을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힐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혜우는 학자일 뿐 아니라 그림쟁이로도 제법 성취에 도달한 사람이란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꽃그림류와 그의 그림은 많이 다르다. 억지로 단순화, 미화시키지 않는다. 학자의 자세로 꽃과 풀을 대하기 때문에 섬세하고 아름답되 진실에 충실해야 해서 구부러진 뿌리며 시든 이파리도 그냥 다 그려낸다.

진실을 존중하는 그 자세는 글에도 녹아 있다. 어떤 유튜버에게 모범적으로 아름다우시네요.’라고 댓글이 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신혜우의 글과 그림도 그랬다. 심지어 검색해서 보게 된 그 이의 모습마저도 그랬다. 외모와 글과 그림이 같다니. 그러기도 참 쉽지 않다.

작은 풀 이파리와 뿌리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가만가만하고 조심조심하는 모습. 그림 한 획들이 그러하고 글 한 단어들이 그러하다. 책도 그렇게 귀하게 쓰여졌다. 그래서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책에 나온 귀하다(저자가 식물들에 대해 서술하는 말이지만)’의 세 번째 뜻대로 이 책은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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