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 2003-11-26  

명징한 정신과, 팍팍한 삶 사이에서...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풀꽃선생님 서재를 놀러와 보니, 곽재구 포구기행을 읽은 감상과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비평이 잔잔하게 마음을 흔듭니다.
왠지 몇 자 적고 싶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으면서, 시답잖은 줄거리보다 더 가보고 싶었던 피렌체의 대성당, 그 두오모가 아닐까 하면서 선생님 서재 사진을 봅니다.
살아온 시대가 비슷했던 사람들이 갖게 되는 마음 속의 火傷들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위안을 받곤 합니다.
세상을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다가, 사랑하며 살다가 마무리할 수 있는 여유를 늘 의심하게 되고, 내가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불안한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서 만날 수 있는 건, 이런 공간의 혜택이라고 억지를 부려 봅니다.
그렇더라도, 그렇더라도 삶은 행복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읽을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한때 명징한 정신의 시대에 휘청대던 삶을 추억하며, 돈도 명예도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성의 팍팍한 삶 사이에서 가끔 뭔지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습니다.
강원도는 춥겠군요. 몸조심 하시고, 늘 아이들에게도 따스한 선생님 돼 주시길...
 
 
풀꽃선생 2003-12-0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
그래요, 평소에는 잘 어울리던 8,9년 어린 동료들하고 노래방에 함께 갔을 때 느끼는 소외감, 그들 중 주민등록번호가 6자로 시작하는 사람
이 있으면 그와 공유하던 노래들의 따스함... 그런 비슷한 것이 아닐까...
사진은 파리의 노틀담이구요, 공사 중이었는데 공사를 위한 와이어 사이로 카메라는 뻗어 찍은 가고일이랍니다. 턱을 괴고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사랑하는 연인을 시내에 두고 마법에 걸려 해지기만을 기다리는 애절한 영혼같아서...
강원도는 제가 첫 다섯 해를 보냈던 곳이지만 지금은 마음의 고향일 뿐이랍니다. 지금은... 생의 대부분을 지냈던 서울에서 다시 살고 있지요. 숨이 막힐 것만 같아서 한강을 건널 땐 기어이 창문을 내리고 시속을 높여 물냄새 바람냄새를 들이마시죠. 모아이 블루가 좋았던 건 그 글보다도 사진 속의 물빛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 책은 글샘님의 서평을 보고 산 것 같은데요.
요즘은 최승자 시인의 일기가 재미있어요. 님은 무슨 책을 읽으시는지요?

글샘 2003-12-02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고일과 노틀담이었군요.
저는 요즘 책을 읽을 정신이 아니랍니다. 팔자에 없는 일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 학교 도서관에 책을 산다고 신청하라길래 풀꽃선생님의 리스트와 '달팽이'(아시나요?) 선생님의 리스트를 훑어 보고 신청을 좀 했습니다. 김정란 시인과 최승자 시인의 리스트가 가슴을 헤집고 핏빛으로 쓴 시들이던가 뭐던가... 암튼 리스트의 제목이 너무 멋져서 책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요즘은 아들 잠자리에서 책 좀 읽어주다가, 화장실에서 읽는 정도가 전부랍니다. 가끔 서점에서 사람 기다리다가 동화 한 권 정도 읽고... 슬프지요.
서울... 제가 십년을 살다가 도망친 마을이랍니다. 지난 주말에 일산에 병문안 가는 길에 한강대교를 지났는데, 서울은 참 밋밋한 거 같았어요. 한강이. 미끈거리는 느낌.
저는 아침마다 광안대교라고 바다위로 달리는 다릿길을 달린답니다. 다리 위에서 매일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태양의 붉은 낯을 보고, 은빛 윤슬을 곁눈질하는 시원함을 참 좋아합니다.
선생님 리뷰를 읽고 유리가면을 보러 만화방에 가야지 하면서도 아직 못 가고 있네요. 마음이 포근한 겨울 준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