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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평점 :
중학교 때 어디선가 들은 아름다운 구전가요가 있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제는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 모두 눈을 감고 생각하자
(중략)
산속에 사는 사람 감자 캐먹고
물가에 사는 사람 물고기 먹고
뒤뜰의 풀잎은 이슬 먹는데
별나라 사람들은 무얼 먹을까
쌍안경으로 별자리가 보이냐?
작사가도 작곡가도 알 수 없는 이 노래, 윤동주의 <눈 감고 간다>와 앞부분이 비슷한 이 노래가 나의 시심(詩心)과 우주적 상상력을 동시에 자극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 역시 ‘태양을 사모하고 별을 노래하는 아이’였던 까닭이다. 6학년 교과서 거의 끝부분에 실렸던 ‘지구과학’은 신비롭고 흥미로웠다. 학습을 해야 할 내용 - 태양계 별들의 순서나 거리 따위 – 도 재미있었지만 덧붙여진 별자리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진심으로 별나라가 궁금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가 과학연구학교였던지라 6학년 여름방학 내내 과학연수를 받는 교사들과 함께 과학교과서 전 과정의 실험을 다 해 보며 서울 어린이 과학경진대회 준비에 매진했다. 그때는 나름 과학 소녀였다. 그리고 그해 가을 무렵 지구과학을 배울 때에는 엄마에게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졸랐다. 어디선가 당시 신세계 백화점 맨 위층에서 학습용 천체망원경을 판다는 정보를 입수해 엄마를 설득했던 것 같다.
엄마가 어렵사리 사온 것은 그러나, 천체망원경이 아니라 고감도의 쌍안경이었다. 엄마는 그것도 무척 비싼 것이고 백화점에 천체망원경을 팔지 않아서 대신 사온 것이라고 하셨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을 보았는데 당연히 별이 보일 리 없다. 고개를 뒤로 꺾고 하늘을 휘젓던 내게 보인 건 달님. 그런데 놀랍게도 달의 분화구가 다 보이는 게 아닌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달의 앞모습만 보는 게 지쳐서 그만 둘 때까지, 꽤 오랜 가을과 겨울의 시간 별자리 대신 달을 바라보면서 사춘기 초입을 지났다. 그때 엄마가 진짜 천체망원경을 사다 주셨으면 혹시 이과로 진학하고 천문학을 전공했으려나.
상상력이 풍부해야 과학을 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다 보면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정연함으로 끝을 맺을 것이지만 저자처럼 그 중간을 감성과 상상력으로 채우는 이들이 있겠다 싶다. 아니, 과학자야말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입증하는 그 과정은 상상력이 아니면 가지 못할 미지의 길이지 않은가.
가끔 자신의 우울의 끝을 우주로 날리는 학생들이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 중에는 생각을 확장하고 확장하다 하늘과 별에 대한 궁금함으로 펼치는 이들도 있다. 상담실에서 만난 학생 중에 그렇게 우주에 대한 관심을 넌지시 드러낸 아이가 있다. 그에게 <코스모스>를 선물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어른이 보기에도 너무 두껍다(보급판도 자그마치 719쪽). 아무리 아름다운 문체에,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라 해도 과학의 기초 상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지루할 것이다. 나 역시 어떤 대목은 중학교까지 열심히 공부한 과학상식에 기대어 갑자기 튀어나오는 유클리드나 피타고라스를 겨우겨우 감당하며 읽어야 했으니, 공부가 싫고 학교가 괴로운 그 학생에게 과학책을 건넨 게 과연 잘한 일일까? 하지만 나는 아무 데나 펼쳤을 때 여기저기 보이는 행성들의 사진이나 상상화라도 들여다보라고 이 책을 안겨주었다. 혹시 또 아는가, 우울이 극심할 때, 그러나 우주로 날아갈 수 없을 때 상상으로 별나라를 여행하듯이 이 책의 아무 대목을 읽으며 그 소년도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지.
우울 따위 우주로 날려 버려!
케플러가 자기 어머니를 마녀사냥에서 구해내기 위해 책을 썼다는 이야기나 칼 세이건이 집필할 때 사슴이 집 앞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어깨 너머로 그 원고를 들여다본(?) 이야기, 원시인들이 별자리를 보며 지구세상을 상상하는 이야기이며 ‘인위도태’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일본 바다에서 잡히는 사무라이의 얼굴 모양의 게 이야기 들은 그냥 그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롭다. 과학은 논리가 아니라 꿈꾸기에서 비롯된 희망임을, 그래서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마치 문학도가 품고 사는 윤동주 시집처럼, 누군가의 손때 묻은 기타처럼, 어린 날을 위로해주던 그림책이나 애착인형처럼 그냥 품고만 있어도 따뜻하고 신비로운 그런 책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이 곳이 아닌 먼 곳으로 가고 싶어 우울’하다는 사람을 만나면 당장 이 책을 사서 베개로 삼으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