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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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왜 파스칼 키냐르가 떠올랐을까. 프랑스 문학 특유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여서 그랬거나 아주 가까이에 존재하는 자연 호수, , 나무, 바람 따위-을 느끼게 하는 문장 때문에 그랬을까. 문학 혹은 음악적 감수성 때문이려나

 

요즘 나는 책에 대한 책에 많이 끌린다. 어떤 책은 지적 고양을 위해 섭취하지만 또 어떤 책은 영양가를 떠나 위안을 위해 읽기도 한다. 그림책, 그림에 대한 책, 문체가 아름다운 책, 오직 문체만으로 읽는 책, 여행에 대한 책, 다 아는 이야기지만 그냥 즐거운 책, 서점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책... 그런 것들은 그냥 나를 위한 책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가 그런 책일 거라 생각해서 읽은 건 아니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책인지 살피려 했던 거였다. ‘책방 할아버지라는 표현 때문에 이 책이 좀 만만하고 따뜻하게 여겨진 것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이, 감성적인 친구, 미학적인 만남을 위한 그 누군가에게 선물할 만한 책이다. 오히려 중학생들에게는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레구아르는 배움이 짧은 요양원 직원이지만 삶의 고비를 넘기려 하는 할아버지 파키에 씨를 만나면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적이고 감성적인 자산을 그레구아르에게 물려주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한 사람을 한 사람의 인생을 책 앞으로 이끄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나도 국어를 가르치고 책으로 아이들을 만나지만 정말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 기초적인 독해력을 갖지 않은 아이를 독서의 바다로 이끄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심지어 나의 아들, 딸조차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게 쉽지 않았는 걸. 내가 아는 모든 노하우를 동원하였건만.

그러나 파키에 씨는 그레구아르 안의 맑은 영혼을 알아본 건지, 아니면 삶의 끝자락에서 절박하게 만난 이가 그 아이여서 그런 건지, 그레구아르에게 자신의 모든 영적 에너지를 쏟아 붓듯 한다. 자기에게 책을 읽어 달라 하고, 다른 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라 하고, 삶을 마감하는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책으로 배웅하라 한다. 심지어는 끝끝내 병든 자신의 몸으로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수도원, 거기에 있는 와상(누워서 책 읽는 알리에노르 조각상)을 자기 대신 찾아가 책을 읽어주고 오라는 미션까지 준다. 파키에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해주는 과정에서 그레구아르는 학교 교육에서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책읽기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알아간다. 그야말로 산 교육이다. 그 과정은 참으로 가열하고 아름답다. 나는 문체도 좋았고 그렇게 나이 많은 이가 젊은이에게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는 과정을 보는 일이 참 좋았다. 가르치는 자로서 나의 자세를 돌아보았다. 많은 책을 건네고 읽히고 선물하며 독서교육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내가 과연 충분히 열정적이었던가 반성도 했다. 농담처럼 말하는 영혼을 갈아 넣고 삶을 녹여내는 가르침이란 이런 것일 터이다.

 

마음이 아픈 아이에게 이 책에서 그레구아르가 여행 중에 했던 것처럼 나무에게 책 읽어주기과제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방과 후에 몽골에서 온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집에서 어머니께 동화책을 소리 내 읽어드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냥 너 자신을 위해 책을 읽으라는 말보다 누군가를 위해 네가 책 읽어주는 이가 되라는 과제는 세 영혼을 구제할지도 모른다. 책 읽어주는 이, 듣는 이, 그리고 그 미션을 준 이.

 

이 책에서 얻은 시 한편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위해 교사상담연수 ; 청소년 소설 읽고 우리 학생들 이해하기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용했다.

 

 

우리가 쓴 모든 것의 최초의 선구자인 신은

사람들이 취해 있는 이 땅 위에서

정신의 날개를 이 책 속에 넣어놓았다

책을 펼치는 사람은 누구나 거기서 날개를 찾아

영혼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저 높은 곳을 날 수 있다.

학교는 예배당과 같은 성소이다.

아이가 알파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하나씩 따라 읽을 때

문자 하나하나마다 미덕이 들어 있으니

그 심장은 이 겸허한 미광 속에서 은은히 빛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책을 주어라.

손에 램프를 들고 걸어라,

그 아이가 따라올 수 있도록. -빅토르 위고

 

 

모두가 학교를 욕하지만 높은 정신을 지녔던 어떤 이는 학교에서 종알종알 책 읽는 아이들의 가치를 귀하게 평가했다는 생각을 해보면 학교를 지키고 있는 내가 조금은 자랑스럽다. 아이들에게 책 읽히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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