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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평점 :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남서부에 있는 도시란다. 지은이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란 출신의 예술인이다. 여성이다. 이란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사실은 관심도 없다. 다만 학생들에게 읽힐 만한 책들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접했는데 나야 별로 관심 없는 분야라 할지라도 남자 중학생인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도 세상에 대한 눈을 넓히는 독서를 하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눈을 닫고 모른 척 했던 절반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란의 역사는 워낙 복잡해서 이 책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리석은 역사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것 같다. 비슷한 연배(지은이는 69년생이다)에 조국이 역사의 격동을 겪어야 했던 청춘에 대한 공감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었다. 지은이는 고문과 살인이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진보적인 부모 밑에서 남다른 감각과 지성을 지닌 소녀로 살았던 일에도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일반인이 겪기도 힘든 역사이지만 특히나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춘기 소녀에게 남녀차별과 억압, 정치적 질곡의 사회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 역시 사춘기와 청춘 시절까지를 군부독재 치하에서 보내야 했다. 중학교 때 소문으로 듣던 광주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겪어야 했던 전두환의 역사, 대학생 시절의 6월 항쟁, 청춘 내내 맴돌던 최루탄 냄새와 불심검문, 잡혀가던 친구들, 남영동에 끌려갔다 온 남자친구... 물론 우리는 마르잔처럼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제는 민주정부를 누리고 산다. 해일을 피해 안전한 언덕에 올라 남의 고통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 책 읽는 심정이 편치만은 않았다. 하긴, 바깥에서 우리 한반도를 바라보는 이들은 우리가 핵전쟁의 위험 속에서 근근이 살고 있다고 안쓰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 여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멀리 뉴스를 접할 때에는 폭격으로 아이들이 죽고 민간인의 삶이 파괴되고 여자들이 명예살인을 당해도 ‘너무 흔한 뉴스’의 피로함 때문에 아예 기사를 읽고 싶지 않게 된다. ‘타인의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 문학은, 예술은 더 가까이 그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내게 속삭인다. ‘남의 일’이라고? 이토록 생생한데? 너의 일일 수도 있었는데? 그들도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었는데? 차도르나 히잡 같은 베일을 쓰면 표정이 감춰져서 욕망도 억누르면서 그런 삶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 거라 생각하지? 너와 똑같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고 공부하고 배우고 싶어 하고 사랑하고 싶어 하고 가족과 헤어지지 않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왜 몰라? .....채찍질이다.
지은이이자 주인공인 마르잔이 어린 의협심에 못된 짓을 한 친구 아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친구에게 응징하겠다 하자 마르잔의 어머니는 “그 애 아빠가 그랬지. 하지만 그게 라민의 잘못은 아니잖니.”라고 말한다. 이 쉬운 말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전대의 악행을 후대에게 복수하려 들면 그 어떤 역사도 발전하지 못하리라. 피의 역사가 아직도 계속되는 곳을 보면 그 복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고. 무조건 용서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임을 분명히 하되 감정적인 보복의 욕구로 넘나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마르잔의 부모는 마르잔을 유럽으로 보내기로 한다. 마르잔의 할머니가 떠나는 손녀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거다. “살다 보면 사내 녀석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만약 그 녀석들이 네게 상처를 준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그건 녀석들이 멍청해서라고, 그렇게 하면 네가 남자들의 잔인함에 대응하려는 걸 막을 수 있을 게다.” 할머니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헛된 복수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말라는 지혜로운 이유가 더 크다. 하지만 나는 그 다음 말이 더 마음에 남았다. “언제나 존엄성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라.” ‘자존감’의 의미를 이보다 명확하게 표현한 훈화가 있을까 싶다. 사춘기 초입에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말들과 비슷하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똑바로 걷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단단하게 살라고 스스로에게 뇌는 말들이 조금은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할머니의 말은 마르잔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그냥 당당하라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라.’라니. 그 어려운 것을 해내야 존엄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