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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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은 말 그대로 걷기에 대한 통찰의 문학작품이었다면 이 책은 소소한 일상과 책, 상념들을 담고 있다. 특히 왜 쓰는가라는, 작가들 누구나 스스로에게 무수히 던져보았을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들이 담겨 있다. 어머니 집에 돌봐줄 이가 없게 된 살구나무 열매들을 거두며, 그것을 잼으로 담그는 과정에 소소히 작가가 읽고 겪은 일들이 담긴다. <걷기의 인문학> 먼저 읽어 나에게는 위대하게만 느껴졌던 작가가 어머니 때문에 애면글면하고 독박부양에 억울해 하는 모습이 친근하다. 그 와중에도 정신적 중심을 잃지 않는 고고함(사실은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비슷한 모습을 정희진이나 은유에게서 본 적 있다. 작가라 하면 꽤나 우아할 것 같지만 생활은 누구에게나 누추하고 주름진 것, 게다가 이들처럼 최선을 다해 사는 이들은 먼지와 밥차리기를 벗어날 수 없었던 일상, 그럼에도 그 위에 피어나는 정신승리의 결과가 글쓰기였다. 나는 그들과 연대의 연장 선상에 나를 놓아본다. 이름을 얻고 아니고를 떠나 우리는 모두 치열하게 살아왔다.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책만 읽고 글만 쓴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아마도 글은 더욱 빛났나 보다. 그래서 더욱 나는 그들의 글에 마음이 꽂혔나 보다. 리베카 솔닛은 버릴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살구잼을 담그면서 깨닫는다. 내 앞에 놓인 두 개의 유리병은 받아 적은 이야기 같다. 두 유리병에는 그렇게 보관하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것이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는 사라지게 두는 편이 나았겠지만, 무언가를 적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이야기를 그 모습 그대로, 설탕물에 담근 살구처럼 고정시키는 일이다. 일상은 곧 글의 필연과 닿는 비유가 된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가 한 말,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 을 인용하면서 그이는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설파한다.

글쓰기에 관하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살아가기 위해. 폭력이나 무감각으로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것을 정당화하고 삶의 실패를 변명하기 위해, 라고 말하고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기대로 가득한 고치처럼 술탄을 감싸고, 결국 그 안에서 그는 조금은 덜 잔혹한 사람이 되어 나옴으로써 문학의 사명을 다한다. 그러면서 서사가 없었더라면 희미해졌을 감정이 생생하게 유지되고, 과거에 있었던 일과 거의 관련이 없고 지금과는 더욱더 관련이 없는 감정이 서사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문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언급한다. 즉 문학은, 이야기는, 서사는 인간사 안팎으로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임을 말한다. 내가 평생을 걸쳐 스스로에게 묻는 것, 왜 아이들에게 실용 이상의 문학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일까, 글쓰기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문학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거냐고 묻는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에 대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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