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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이금이 소설이고 사서 선생님이 강추한 소설이라 망설이지는 않았지만 하와이 이민자 이야기라니, 그다지 관심을 두었던 적 없는 소재라 좀 뜨악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 재미있어서 이러다 잠을 설치겠다 싶어 책을 덮었다. 아껴 읽어야지 하고.
일제 강점기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몰락한 양반집 처자 버들이가 ‘사진 결혼’으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난다. 조선에서의 이야기도, 결혼을 위해 일본을 거쳐 머나먼 길을 떠나는 이야기도, 얼굴도 본 적 없는 남편감을 그리며 설레는 이야기도, 가서 만난 남편 가족의 슬픈 이야기도, 온유하면서도 강인한 조선여자 버들이 하와이 이민자 어머니로 살아내는 이야기도 모두 참 재미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듯 보이는 버들이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 중 가장 좋았던 장면은 자기 옛 정인 이야기를 들려준 남편 태완에게 시어머니 묘지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지는 가 볼랍니더.”
태완이 고개를 번쩍 들어 버들을 보았다.
“딴 가시나한테 마음 다 준 사나라 캐도 지는 당신하고 계속 가볼랍니다. 가다 보면 당신 맘도 돌아오는 날이 있겄지예. 당신도 노력하겄다고 어무이 앞에서 약속하이소.”
태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고마, 퍼뜩 일나소. 지 손도 놓칠 깁니꺼?”
버들이 태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냥 그런 아픈 역사와 사연으로 그칠 수도 있었던 이 소설은 역사적 이야기도 담는다. 우리는 잘 모르는 재미동포들의 독립운동 이야기와 파벌에 얽힌 씁쓸한 이야기가 세세히 담겨 있다. 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승만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말아먹게 되었을까 늘 의아했다. 욕심을 부렸다는 것도 알겠고 임시정부 대통령 자리를 꿰차려 했던 것이나 서둘러 정권을 잡느라 분단을 앞당긴 것도, 독재를 하고 하야를 한 과정도 다 알겠는데 다만 미국에서 뭘 어떻게 했기에 독립운동가들 사이를 분열시켰다는 건지는 잘 몰랐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것을 읽어도 잘 모르겠던 그 내용들이 이 책에 있다. 같은 동포끼리도, 심지어 독립운동을 하고 거기에 힘을 보탠 이들까지도 이승만 파 박용만 파로 나뉘어 갈등했던 이야기가 거기 있다. 이제야 알겠다. 이것은 그저 갈등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처 풀지 못한 역사의 실타래의 실마리가 거기 있다. 이 소설을 묵직하게 여겨야 할 이유이다. 하와이에 건너간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삶을 선택했지만 결코 조국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전부터 있던 대한부인회 회원들이 조선의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부인구제회를 새로 설립했다.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 다치거나 감옥에 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이금이를 ‘청소년 소설 작가’로 가두지 말아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