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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평점 :
마음 편하게 사는 법이 있다. 성공했을 때는 내가 열심히 했고 뛰어나서, 라고 생각하고 실패했을 때는 운이 안 따랐다거나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 주변 사람이야 어떻든 자기긍정성은 행복의 지름길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인격적으로는 겸손한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요, 심리학적으로는 자기건강성이 강한 건지 반대로 병적인 ‘자아 확장’인지 본인은 모른다. 특히나 재능이 있거나 무언가 성취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래 전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한 여선생님이 “자기가 돈 벌어 외제차 타고 다니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외제차를 부도덕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십 년 전 이야기이긴 하다. 나는 그 사람이 돈을 잘 벌 수 있게 되기까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던 건 아니었겠냐고, 특별히 탈세나 탈법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사회구조적 혜택을 입은 사람들도 모두 자기 자신의 노력이나 재능으로 잘살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로버트 프랭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나 보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우리는 조금 먼저 미래에 도착했습니다>에서도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이 그와 비슷한 것 같다. ‘건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미덕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그런 사회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어떤 경쟁사회도 완전히 공정하지는 않다는 것에 저자는 주목한다. 돈이나 배경뿐 아니라 재능을 타고나는 일도 당연히 기득권자의 몫이다. 심지어 ‘성실함’마저도 사회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숱한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동료교사의 발언에 주목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에 있어서 행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여러 공공투자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렇다. 못 사는 사람, 실패한 사람들을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공공투자나 세금으로 운용되는 여러 가지 제도가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내 주변에도 그저그런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간부로 성공한 사람이 있다. 그는 늘 요즘 청년세대에게 주어지는 각종 복지 혜택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돈 없다고 징징거리면서도 스타벅스 커피는 꼬박꼬박 마시는, 육아 핑계를 대고 온갖 꼼수를 부리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소수이며 대다수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직접 말은 안 하지만 자기처럼 노력으로 ‘개룡(개천에서 나온 용)’이 된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부자는 아니지만 머리 좋은 부모 밑에서 성실함을 보고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기득권을 지녔다. 육아를 전담해주는 친정어머니 덕분에, 그리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학비 덕분에 박사학위를 땄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그걸 못해내는 사람들의 부족한 노력을 비웃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었다. 물론, 책을 다 읽어도 그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평생을 스스로의 노력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며 자부심을 느껴온 그에게 그 세계관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자기철학을 부정하는 힘든 일일 테니 말이다. 그래, 세계관을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경멸하지는 말아다오. 그들이 너와 같은 안정된 가정, 도와주는 부모, 좋은 머리를 타고났다면 그들도 저렇게 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 인정해다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걸 그대로 인정하기만 하면 세상이 허무하긴 할 거다.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 하지만 운에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들이 결국 고꾸라지는 모습도 많이 본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나마 세상에 질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한다. 하지만 아예 그 영역을 벗어난 사람들도 많다. 미국은 더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별 혜택을 못 누리고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에 반발하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미국 내 불평등을 세계적으로 확장할 때, 그들 개개인의 가난을 감수할 만큼 ‘미국인’으로서 누리는 세계적 혜택을 더 인정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 거대한 나라가 이 불공정한 세계, 강한 자만이 모든 것을 누리는 승자독식의 사회, 그 가치관을 거부하지 않아야 ‘개인은 가난하더라도 나라는 부유한’, ‘개인에게는 가혹할지라도 국제적으로는 공정하다고 생각되는’ 지금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래저래 저 거대한 제국은 언제 문을 닫을까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미국이 무너지면 지구 전체가 멸망할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하는데 과연 그럴지 궁금하기도 하고. 뜬금없는 소리지만 미국의 몰락하며 온 세계가 패닉에 빠진다면 상대적으로 쿠바나 북한 같은 나라는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하게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