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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평점 :
먹방 좋아하지 않고 요리하기를 몹시 꺼려하는 나이지만 요리사를 꿈꾸는 나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신문에서 연재할 때 몇 번 이 글을 읽은 듯하다.
내용은 관심 영역이 아니지만 이런 재기발랄한 문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장 자체를 즐기며 재미있게 읽었다. 음식에 관심이 없는 이도 다른 나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박찬일의 농담 코드는 한국적이지는 않다. 과장된 장면을 시크하게 말하는 방법, 투덜거리는 마초 캐릭터 같이 묘사하지만 그 안에 철학과 인간미를 담고 있는 주제뻬를 묘사하는 방식, 고생하고 고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남 이야기하듯 거리두기를 하는 위트 등. 이런 유머를 잘못 구사하면 세상 가벼워보인다. 물론 그가 다룬 ‘한국 셰프가 이탈리아에 요리 유학 가서 시칠리아 어느 식당 주방에서 개고생한 이야기’는 충분히 가볍고 발랄해도 무탈할 소재이긴 하다. 그런데 낄낄거리고 읽으면서 마음이 깊어지는 지점이 있다.
가령 유기농 채소에 대하여 이런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
미국 캘리포니아 거대 유기농 기업들은 최저임금에 멕시칸들을 고용해서 땡볕 아래 샐러드용 채소의 벌레를 손으로 잡도록 시킨다. 그 채소는 다시 경유를 펑펑 쓰며 수천 마일을 달려서 미국 동부로 간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유기농일까?
박찬일의 주방장이었던 주제뻬가 과도한 육식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
“아마도 우리 자식들은 쇠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없게 될 거야. 우리가 다 뺏어먹었기 때문이지. 고기가 언제까지 무한정 값싸게 공급될 거라고 생각해? 고기는 지구를 파괴하고 있지. 초지가 말라가고 아마존이 무너지고 있어 그게 다 없어지면 우리 아이들에게 고기를 줄 수 없을 거야.”
그리고 푸아그라 만드는 방식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통한 간접적인 비판(박찬일 셰프는 푸아그라를 요리하지 않는단다)...
결론적으로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생각할 거리도 있는, 어른에게도 중딩들에게도 권할 만한 좋은 책이다. 베네치아에서 경찰들에게 공식적으로 삥 뜯긴 아픈 추억 때문에 이탈리아에 다시 가고 싶진 않지만 이글을 읽고 시칠리아가 조금 궁금해지긴 했다. 이탈리아 음식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내가 즐긴 것의 세 배 정도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