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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평점 :
글 중에 ‘사력을 다해 혼자 있기’, ‘나는 슬픔의 나라에 슬프러 입국한다.’, ‘아름다운 것 앞에서 슬퍼지자는 것이 나의 의식이려니, 나의 축제려니...’ 이런 구절을 보면 왜 제목에 ‘혼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지 알 것 같다. 시인은 혼자 사는 사람의 감성을 진실 되게 표현하고 있다. 아직 혼자이거나 지금은 혼자인 이들, 언제라도 혼자가 될 각오인 사람들, 혼자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 모두 이 책 곳곳에 공감의 플래그를 붙일 것이다.
나는 결혼도 하고 자녀들도 있고, 직장에도 10대 남자아이들이 북적이는, 결코 외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지금 50대 중반의 우리들은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을 잘 못하는 세대이지만 나는 아주 일찌감치부터 혼자서 잘 놀았다. 이 글 쓴 이처럼 정말 혼자라서 혼자 잘 노는 게 아니라 혼자가 필요해서 혼자 잘 놀며 살아왔다. 나이가 들면서는 이제는 지난 수십 년간의 간절히 혼자이기를 원할 만큼 고단했던 삶을 살았던 대가로 외롭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동안은 얼마나 그런 시간을 갈구했던가.
어느 날 딸이 묻는다. 엄마는 우리 어릴 때 직장 다니면서 힘든 걸 어떻게 견뎌왔느냐고. 나는 시간이 나면 기를 쓰고 혼자 미술관에도 가고 서점에도 가고 그랬다. 그게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던 것 같다. 몸의 피곤함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아마도 육아와 가사와 삶에 치이는 많은 젊은 여자(남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 아닐까. 어떤 이는 혼자라서 외롭고 어떤 이는 너무 분주해서 외롭다.
이병률은 역시 이병률이다. 이야기를 엮는 힘도 좋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꼭꼭 밟아가며 아름답다. 책 속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즐겁지만 별 내용이 아니어도 문장 하나하나만으로도 책 읽을 가치가 있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90년대를 풍미했던 어떤 소설가는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신00체’라는 그녀만의 문체로 독자들을 행복하게 했다. 때로 문학은, 예술은 형식만으로도 예술이다. 이병률도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