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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이 글의 지은이와 나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공부를 할 때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나야 영어를 못하는 것이 생존이나 생계와 직결되지 않아 고통이 심하면 때려치우면 된다. 저자는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이 몸의 생존이었고 이방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은 영혼의 생존이었기 때문에 그 고통은 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말과 글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는 소박하지만 자부심을 느끼고 산다. 그 입장을 뒤집어야 한다면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한때는 식민지였고 그보다 더 긴 세월을 동북아의 패권언어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 말에도 글에도 생채기가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사라져 가는 지구상의 많은 언어들에 비하면, 식민지 역사 속에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위상의 강등을 당한 많은 언어들에 비하면, 패권언어에 아예 자신의 존재를 묻어버린 많은 언어에 비하면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생각한다.
헝가리어를 잃어버리고 자존감도 잃어야 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와 달리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외국어 공부를 하는 나는 자존감을 잃을 이유가 없다. 진도가 나가지 않고 성과가 적어 답답한 것은 그저 나의 언어공부머리가 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즐기며 공부할 일이다.
남의 절박함을 읽으며 상대적으로 내 처지가 덜 힘들다고 위로를 받는 일은 좀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그 이유로 감사하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어떤 언어로라도 이토록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남겨준 아고타 크리스토프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