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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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좀더 젊었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이런 구라스러운 말빨을 비판하면서 책을 읽다가 말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처음에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어떻게 끝을 맺는지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듣게 만드는 약장수 혹은 싸구려 여행의 가이드가 펼치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줄거리만 추려놓고 보면 오페라도 뮤지컬도 소설도 3류 드라마와 다를 것이 없다. 문학이라면 거짓말도 진실되게 믿게끔 만드는 문체나 이야기 구성의 치밀성 혹은 주제의식 등등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사건의 개연성들이 놀랍다. MS 혹은 에핑 혹은 바버의 젊은 날의 초상이야기일까 싶다가 3대의 끈끈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인지 했는데 미국 황야에서 소멸해간 인디언 이야기 같기도 하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소진되어 버리는 인생의 허무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이렇게 3대가 내내 극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한 사람에게도 일어나기 어려운 모두를 가졌다가 모두를 잃는 일들의 반복이... 드라마틱한 삶을 원하지 않는, 벌레의 삶처럼 옹송거리며 얌전하게 살다 가고픈 1인으로서 뭐 이런 삶이 좋을 리도 없고 꿈꿀 일인들 있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현실을 조금만 모아 보면 소설 못지않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폴 오스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문학 작품에서 단 한 장면만 나의 이야기와 접점을 만나도 그 작품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처럼 드라마틱한 작품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겠나.

 

최근에 영어공부 한답시고 프렌즈니 모던 패밀리니 하는 미국 드라마들을 보고 있다. 미국을 제국주의라 부르며 적개심을 불태우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인문학도들은 미국 문화나 문학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프랑스 문학이나 러시아 문학, 심지어 영국문학을 읽으면서도 미국 소설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달의 궁전>은 미국문화와 문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철학적이고 사색적이고 영적이고 범우주적이고... 그렇지는 않지만(그러기에는 폴 오스터의 입담이 너무 재미있다), 늘 하하호호하는 긍정 만땅의 미국인, 세상 최강대국가 국민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마이너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존중보다는 다 가진 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거만한 너그러움, 심지어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자의 이미지에서, 그들 또한 슬프기 한량없는 한 마리 영혼을 가진 짐승들이며 삶의 비참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초라한 존재들임을 알게 해 주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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