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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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스플레인 리베카 솔닛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일까? 80년대 빨갱이라는 말과 같은 낙인언어가 되어버린 21세기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이 책에 콱 찍어도 될까..

나는 ~주의자이다’, ‘이 책은 ~이즘 책이다그런 단언은 대체로 치졸하고 단순한 평가가 되기 십상이라 생각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그런 선언이 단순하여 더욱 강력한 에너지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당신 책을 페미니즘 책이라 부르겠다고 전한다면,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갖는 불온하고 불편한 왜곡을 다 알더라도 리베카 솔닛이라면, 아마 얼마든지 그리 하시라고 할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온각 오욕을 뒤집어쓴 그 단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그 단어를 다시 말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이다.

 

나는 남자중학생들을 오래 가르쳐 왔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은 요즘 남녀 역차별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분노에는 억울함도 있다. 우리가 뭘 그렇게 많이 누렸다는 거냐는, 이제 서서히 여성들이 우위인 (어쩌면 이미) 그런 세상이 오고 있다는, 우리처럼 대체로 지질한 남자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결국은 루저가 되고 말 것이라는 피해의식에 가득 차 있다. 물론 그러면서 그런 울분과 열등감을 어두운 컴퓨터 앞 야동과 게임으로 풀어내기도 하는 안타깝고 답답한 자화상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 10, 20대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아이들에게 차별과 편견’, ‘여성과 인권을 말할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 그것이다. “여성들이 남녀차별을 말하는 것이 결코 여성이 우위인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인권운동은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은 덜 서운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한국의 많은 젊은 남자들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조금은 황당해진다.

 

여성해방운동은 남성의 힘과 권리를 침해하거나 빼앗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곤 했다. 마치 한 번에 한 성만 자유와 힘을 누릴 수 있는 암울한 제로섬 게임인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자유인이 되거나 함께 노예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마리 시어는 페미니즘은 여자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라고 말했다 한다. 실소를 자아내는 말이지만 이처럼 뼈저린 말이라니. 한때, 여자는 사람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머리로는 여자도 사람이지, 당연하지라고 생각할지라도 여전히, 몸으로, 가슴으로, 의식으로는 여자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많은 남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시대이다.

 

대학생인 나의 딸이 어느 날 남자친구와 페미니즘논쟁을 벌이다 결국 싸우고 돌아와서 하소연한다. 남자들은 결코 여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면서 알라딘을 열어 페미니즘 책을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책 추천을 요구하였다. 나는 집에 있는 <걸 페미니즘><페미니즘의 도전><맨스플레인>을 뽑아주었고 딸이 담은 장바구니에서 3,4,권을 주문해 주었다. 딸은 내가 먼저 저 책 다 읽고, 호돌이(남친 별명)에게 권할 거야.”라면서 씩씩거렸다.

이런 장면은 지하철에서도 본 적이 있다. 여자아이는 앉고 남자아이는 서서 서로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목소리는 다정한데, 그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은 여자가 아기 낳고 육아도 혼자 다 하고 불공평한 세상인 것 같아.” “그래, 하지만 남자는 군대 가잖아,”뭐 이런 대화였다. 옆에 앉은 나는 저들이 조금이라도 말소리가 빨라지거나 화를 내면 어쩌나 아슬아슬해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대화를 들어야 했다. 다행히 둘 중 누군가가 화제를 돌렸는데(아마도 남자아이였던 것 같다.) 어쩌면 지혜로운 마무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들은 더 깊은 논쟁으로 들어갔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대는 남녀가 서로 피해의식에 젖어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겉으로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자들은 마음속으로 저 남자의 공격성, 권위주의가 드러날지 몰라서 두렵고 남자들은 속으로 내 사랑하는 여친이 이기적인 김치녀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녀의 불평등은 역사가 깊고, 쉽게 해결되지도 못할 것 같다. 남녀역차별 주장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당연히 일어날 수 있었던 단순한 반작용이 아니라 지금 현재 한국의 심각한 사회 갈등 문제가 되어버렸다.

남자들은 정말 뻔뻔스러운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그러는 걸까? 실지로 현대의 젊은 남자들은 제대로 된 성평등 의식을 교육받지도 못했으면서 그렇다고 기성세대 남자들이 누리는 특권들도 누리지 못한다. 비뚤어진 성의식은 물려받고 혜택은 물려받지 못한 젊은 남자들의 분노는 또다시 자기 곁의 학교 친구, 여자 친구, 누나나 여동생에게로 향한다. 그 젊은 남자들을 나쁘다고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들에게 올바른 인권과 존중에 대해 알게 한 적은 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토론과 대화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뼈저리게, 여자들이 겪어온 수모와 불안한 현실을 남자들이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페미니즘 논쟁은 그 모두를 가로막는다. 일단 안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 예방교육 시간은 한 해 10시간이 넘는다. 아직도 주로 방송으로 이루어져 수박 겉핥기에 그치는 수업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전에 비하면 인권의식적 측면으로 확장되고 내용도 풍부해지고 있다. 이제는 이것이 성평등 교육으로, 그리고 남녀 모두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인권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분노와 증오로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교육이 아니라. 차분하고 깊이 있는 토론 교육은 그들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리베카 솔릿은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은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에 씌어 진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고 현재에 필요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그 용어를 되찾겠다는 뜻이다. 휴머니즘이나 평등주의라는 대체 후보 용어의 경우,,, 날이 너무 무뎌서 아무것도 벨 수 없는 도구는 쓸모가 없다. 라고 말한다. 인정. 하지만 미국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토론 수업 중 한 아이가 넌지시 물어본다. “선생님, 페미니즘의 정확한 뜻이 뭔가요?” 정말로 많은 남자아이들이 페미니즘을 여성인권우월주의로 알고 있거나 해석하고 있다. 워마드의 주장을 곧바로 페미니즘 진영 전체의 주장으로 알고 있는 아이도 많다. 그나마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변질된 것이군요라고 말하는 아이와는 토론을 이어갈 여지나 있다. 의미의 변질이라기보다 확장이거나, 언론 등에 의한 왜곡이다, 라는 말을 알아듣거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대다수의 아이들은 논리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토론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놓고는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메갈이 싫다, 그래봤자 페미니즘은 꼴페미일 뿐이다동어반복하면서 투덜거릴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학교에서는, 특히 남학교에서는 정확히 페미니즘 교육, 실시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처럼 페미니즘이 혐오적 표현으로 변질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다. 남자교사들이 함께 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딸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래서 딸 아이는 폭풍 페미니즘 독서를 하고, 그 중 몇 권의 책은 남자친구에게 빌려준 후 대화를 나누었나 보다. 물론 서로의 입장 차이를 줄이기 어려워 답답해 했지만 남자친구가 너와 다투었다고 아버지와 이야기했더니 아버지가 나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셔서 나를 돌아보았다. 네 입장을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더 진지하게 듣고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딸아이의 말을 여자들의 과잉반응과 짜증으로 치부했던 자신의 태도를 사과했다 한다.

나는 딸에게 모든 남자를 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말했다. 공부하고, 이해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많은 남자들이 있다. 그들은 동지이다. 남자를 적으로 만드는 게 페미니즘의 목표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나아지지도 않는다. 오빠나 호돌이처럼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자기를 돌아보고, 잘못을 지적해 달라, 고치려고 노력하겠다는 남자들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라고.

 

가르치려는 태도

책의 서두는 그 유명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어떤 모임에서 한 남자가 잘난 척하며 리베카 솔닛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며어떤 책에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내용은 사실은 얼마 전에 저자가 쓴 다른 책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 이 분이 쓴 내용입니다.”라고 옆에 있는 지인에게 알려주었지만 그 남자는 잘난 척을 멈추지 않더란다.

 

이 이야기는 저자처럼 출간된 책과 같은 공적 인정 장치를 거친 사람을 포함하여, ‘여자들의 언술을 불신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의 오만을 지적하기 위해 꺼낸 에피소드다. 리베카 솔닛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에 해당하는 객관적 증거들을 든다. ‘무사위라는 알카에다 요원이 수상쩍다고 9.11 한 달 전 경고했지만 무시당했던 FBI 여성 요원 콜린 롤리의 예가 그중 하나이다. 수많은 사례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지만.

 

강간에 대하여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여학생이 강간당하자 대학 당국은 해가 지면 여학생들은 나돌아 다니지 말라고 일렀단다.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해가 지면 캠퍼스에서 남자를 몽땅 몰아내자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였단다.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예방의 책임을 전적으로 잠재적 피해자에게만 지움으로써 폭력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대학은 여학생들에게 공격자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집중할 뿐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 공격자가 되지 말라고 이르는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절반인 남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성교육의 핵심은 정조를 지키려고 노력하라고 여학생들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남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말할 권리와 신뢰받을 권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두고 씨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더구나 요즘은 양쪽에서 압박이 온다. 남성권리운동과 대중적으로 퍼진 숱한 오보들 때문에, 사람들은 요즘 성폭행 무고가 만연했다고 여기곤 한다. 집단으로서 여성은 신뢰할 만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짓된 강간 고발이 진짜 문제라는 암시는 개별 여성을 침묵시키고, 성폭행에 관한 토론을 회피하게 만들고, 남성을 주된 피해자로 부각하는 도구로 쓰인다.

 

남자들은 성폭력 문제가 나오면 왜 모든 남자를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느냐고 항변하지만 이미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잠재적 성폭력 피해자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으며, 긴장하고 평생을 산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주기를 바란다. ‘강간이라는 말이 너무 무섭게 들려서 성폭행으로 바꿔 부르지만 우리는 오히려 정확한 용어를 쓸 필요도 있다. 성폭행 무고가 전혀 없지야 않겠지만, 만약 무고가 그리도 빈번하다면 있지도 않은 성폭행을 고발하여 이후 삶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뻔한 여성들이 무고를 통해 얻을 것이 무엇인가 되묻고 싶다.

우리 학교 어떤 학생이 여자친구와 노래방에 갔다가 여학생의 가슴을 만져 경찰에 고발되었는데 이 사건을 두고 어떤 남교사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그랬나 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다. 어떤 남자가 이젠 키스도 물어보고 해야겠네?’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당연한 것 아닌가?

 

리베카 솔릿의 책은 예리하고 신랄하기도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실천할 수 있는 대안들을,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의 페미니즘에 대한 고찰은 결국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에 대한 돌아봄으로 발전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구속은 바로 자본주의 경쟁과 잔혹함이라는, 남자들이 조금은 더 유리한 체제 - 하지만 어느 쪽에도 진정 유익하지 않은 그것이라고. 사파티스타 혁명처럼 환경 경제 토착문화 등등 여러 관점을 폭넓게 아우르는 이데올로기에 따른 운동들이야말로 페미니즘만은 아닌 페미니즘의 미래일지 모른다. 결국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진보 운동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적 진보를 지향하면서 페미니즘은 싫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사고의 확장을 위해 좀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노력은 독서, 토론, 경청 등을 말한다.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페미니즘이 싫다면 적을 알고 나를 알기위해서라도 페미니즘에 관해 책을 읽고 그들의 집회에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며 상대방 파악에 나서보자.

뒤에서 욕하는 것은 결코 토론이 아님을, 인터넷에서 웅앵웅, 메퇘지이런 말들을 댓글에 다는 것은 결코 투쟁이 아님을 깨닫기를 바란다. 만약 정말 여성들이 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밝은 낮에 토론의 현장에서 토론다운 토론에 함께 하기를 권한다.

어쩌다가 여성인권운동에 맞서는 남성들이 처절한 투사가 되었는지, 약자들끼리 이렇게 싸우면 누가 낄낄거리고 좋아라 할지, 생각만 해도 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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