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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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누군가는 주석 읽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주석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역자가 주석을 달면서 고생을 했겠다 싶다. 누군가는 처음 보르헤스의 글을 읽으면서 팩트에 해당하는 부분을 검증하느라 애를 먹었을 것인데 그 애먹음이 거의 연구자의 고생에 맞먹을 것이다.

 

나는 합리적인 이해에 연연하지 않고 독서의 즐거움을 누렸다. 잘 모르는 (허구의 공간이 뒤섞인) 세계의 등장, 시공을 초월한 듯한 신비로운 인물들, 팩트와 픽션이 섞인 이야기들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고 보르헤스 특유의 문체(와 번역체까지 뒤엉켜) 더 아름다웠다고나 할까.

 

여기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동하지만 그 스케일은 때로 시공을 뛰어넘는다. 남미와 유럽, 아일랜드와 중국을 넘나들고 사후세계와 우주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바벨의 도서관>을 읽으면서 우주에서 울리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음악을 느끼는 나라는 사람 역시 실제로는 겪을 수 없는 과거와 온 우주를 감각으로, 초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인데...

 

보르헤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페이크 기법(마치 정말 있었던 사건인 양, 정말 있었던 작품인 양, 사람인 양, 극사실적 요소들을 부여할 뿐 아니라 실제의 사실과 적절히 섞는다)을 그저 치기어린 재치로 넘길 수 없는 것은 보르헤스의 박학다식함과 아름답고 장중한 문체 덕이다. 나에게는 사실상 이 작품이 첫 보르헤스이다. 그 전에 <말하는 보르헤스>라는 강연록을 읽었지만(그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보르헤스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소설로는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사람들이 보르헤스를 자꾸 언급하는지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문학작품들이 있다. 어딘가 닮은 듯하지만 어느 것도 닮지 않은 세상 많은 이야기들. 그런 신비롭고 아름답고 치열하고 정교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 보르헤스는 가장 복잡하고 신비롭다

 

얼굴에 반달모양의 칼자국 흉터를 가진 아일랜드의 사내 이야기는 읽으며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자신을 타자화하는 시점(이런 시도가 다른 작가에게 없는 것은 아니나), 3차원적인 접근이 5차원으로 바뀌는 기법이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문단에 설명을 덧붙인 것이 사족같이 느껴진다. 독자들은 이미 마지막 문장에서 다 알아챘을 것인데)

 

보르헤스를 잘 읽으려면 남미문화와 서구 문학에 대한 많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애초에 나는 그런 데 연연하지 않고 그냥 그 분위기만으로도 독서를 즐겼다. 때에 따라서는 주석을 따르고 합리성에 의문을 갖고 지적으로 하나씩 짚어나가면서, 때에 따라서는(대개의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그냥 이해가 되거나 말거나 그 몽환적인 분위기 자체를 즐기면서, 그렇게. 책이 1/3쯤 남았을 때 나는 덜컥 몸살이 났다. 아주 오랜만에 이틀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고 돌아눕는 것조차 힘들게 앓았다. 아프니까 당연히 집중해서 독서를 하기 힘들었다. 그저 몸살일 뿐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몸이 아프면 별 생각이 다 난다.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서 그러하듯이 죽음과 삶의 경계, 시간과 삶의 경계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독서를 했다. 뒤척거리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다가 <픽션들>을 보다가, 두 책이 섞이면서 까무룩 잠이 들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시선이 아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나 보다, 라고. 신이 세상을 굽어보듯, 우주적 관점으로, 심지어 시공을 넘나드는 그런 시선으로.. 그런 이들을 천재라고 부를 터인데, 그런 천재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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