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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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즐겨 읽는 책의 분야가 다르다. 우리의 공통분모인 교육관련 서적과 시집은 똑같은 책이 두 권 생기는 일도 있지만 내가 산 책을 그는 읽지 않고 그가 산 책은 내가 읽지 않는, 그래서 효율성 떨어지게 책장만 많이 차지하곤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점점 많아지는 책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요즘은 열심히 책장 덜어내기를 하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꼭 구입하고 보관하려 애쓰는 책들이 있다. 그림 그리기 책, 자수나 뜨개질 책, 집 사진이 들어가 있는 책, 강아지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책... 언젠가 자수를 놓고 무민 인형을 만들고 시골집을 가꾸고 강아지를 키우리라. 여행을 가서 예쁜 집들을 그리리라. 당장은 아니어도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 솜씨가 늘 것만 같고 자수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행복해진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도 오래오래 가지고 있고 싶어서 샀다. 그림도, 책 이야기도, 상상력도, 그 발랄함도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부터 해보련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해보았을 것만 같은데, 어느 날 밤 잠자리에서 책을 읽다말고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어서 죽을 날이 가까워온다고 생각하면 다 못 읽은 책들이 아까워서 죽기 싫을 것 같아.”

천국이 있으면 아마도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보르헤스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나에게 남편은 만약 어느 곳에 도서관과 식당밖에 없어. 딱 한 곳만 선택해야 하면 도서관 갈 거야?” 당연하지! 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밥을 굶으면 죽을 텐데? 하고 남편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죽어가면서 앞으로도 재미난 책이 많이 나올 텐데, 아직 다 못 읽은 고전도 많은데, 아쉽군.’ 이렇게 생각할 나 같은 사람이라면 요시타케 신스케 무덤 속 책장과 같은 방식의 추모방식이 있다면 그나마 마음을 놓고 눈을 감을지도 모르겠다.

방법은 이렇다.

 

1년에 한 번 찾아가는 무덤에는 그가 생전 아끼던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추모하러 간 사람은 그 중 한 권을 골라 가방에 넣고 천국에서 그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그 해의 추천도서한 권을 가져와 무덤 책장에 꽂아둔다, 문을 닫고 기도하고, ‘가방 안에 든 책을 읽을 생각에 설레며 집으로 간다...

 

죽기 전 자기 무덤책장에 놓기로 하여 고르고 고른 책들이라면 분명 엄청 아끼는 책들일 것이다. 그렇게 엄선되어 무덤책장에 놓은 책을 한 권씩 살펴보는 추모하는 이의 마음은 어떨까. 그와 책 취향이 비슷하지 않더라도 이 분은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었을까? 죽기 전에 이 책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책을 살피지 않을까.

제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책을 자주 사는데 건네주기 전에 미리, 다시 한 번 그 책을 흝어 보곤 한다. 나에게 사무치던 <데미안>이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소년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사랑에 빠진 아이에게 정호승의 <연인>은 어떻게 읽힐지, 그 사람의 마음으로 책을 다시 읽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책을 건넬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춘기를 관통하는 딸과 아들에게 책을 권할 때마다 그 아이가 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책은 전혀 다르게 읽히곤 했다.

그러니 죽은 이를 추모하며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이겠지. 살아 있을 때, 온 몸으로 삶을 누릴 때, 아이를 막 낳았을 때, 30대였을 때, 좌절했을 때, 직장을 은퇴했을 때,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마다 읽었던 책들을 의 마음으로 읽는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이 있는 추모가 되겠지.

 

무엇보다 좋았던 장면은 올해의 신간 중 한 권을 그 책 대신 놓아두고 온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 사람을 기억하는 한 그는 영원히 천국에서도 신간을 읽을 수 있겠다. 물론 유명한 사람이면 그 기간이 더욱 길어질 것이고(노회찬 의원이나 황현산 선생 같은 이의 무덤책장에서 책을 얻고 또 하나의 책을 놓아둘 수 있다면 참 오래오래 좋을 것만 같다.), 우리처럼 평범하여 한두 세대면 잊혀질 사람이라도 적어도 수십 년은 신간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있으려나 서점> 은 참 귀여운 책이다. 책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 속을 다 들여다본다.

사랑스러운 도서관 3에 보면 도서관을 “‘도서관에 갔다 왔어누군가에게 그렇게 은근슬쩍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명한다. 그래, 서점이나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이 좀 있다. 물론 누구나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것, 그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야구장에 다녀오고 연주회에 다녀오고 산을 오르고 나서 나 어디 갔다 왔어, 라고 말하는 마음도 비슷하겠지. 그래도 하여간 서점이나 도서관을 즐겨 다녀오는 사람이라면 자랑하지 않는 듯(?)하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 책 좋아하는 사람이야, 이게 자랑스럽다는 말이다.

 

서점이란 어떤 곳? 이라는 꼭지에도 장차 탄생할 명작을 위해 투자하는 곳’, ‘책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책한테 은혜를 갚기 위해 계속 책에 매달리는 곳이라는, 공감할 만한 문구가 있다. 서점에 온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장차 탄생할 명작을 위해 투자하는 곳이란다. ‘장차 탄생할 명작’, 나 역시 학교에서 어린 소년들을 볼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다. 복도에서 먼지 나게 뛰는 저 소년들이 곧 당당한 청년이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가.

그러니 서점에 근무하거나 서점에 자주 가는 이들이라면 거기에서 앙증맞은 손으로 책을 집어드는 아이들을 보면 그들이 훗날의 명작(비유적으로든 글자 그대로이든 말이다. 책 좋아하던 그 어린아이들 중에 작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아이들이 나올 터이니)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서점에는 책을 읽다가 책을 쓴 사람, 책을 읽다가 책을 만든 사람, 책을 읽다가 서점에 근무하게 된 사람... 들이 복닥거릴 것이다. 우리 모두는 책에게 은혜를 입었고 책 덕분에 더 잘 살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더 좋은 책을 쓰고 만들고 팔고 나눔으로써 책의 은혜는 순환된다.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랐던 책이라는 마지막 꼭지도 재미있었다. 나도 두어 권의 책을 내면서, 처음에는 무언가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점점 우연에 기대어라도 내 책이 더 많은 이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저자들의 마음을 이 책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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