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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쿠바 여행 중 들렀던 벤쿠버의 뒷골목을 잠시 떠올렸다. 낯선 거리의 고서점을 뒤지고 있었던 저자에게 감정을 이입해 본다. 마치 내가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설레 보고, 마치 내가 원하던 책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해 본다.
곽한영 교수는 영어가 익숙해서 다른 언어로 된 책(예를 들면 케스트너의 책)을 사기는 꺼려졌다고 하지만 영어도 낯선 언어인 내 입장에서는 ‘원서’를 비싼 값 치르고라도 사려 했다는 그가 하여간 부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서점의 추억들이 떠올라서. 열 살 때까지 서점 뒷방에서 삼남매가 뒹굴거리며 컸다. 밤 12시에 문 닫을 때까지 서점은 우리 안방이고 놀이터이기도 했다. 언젠가 돌돌 돌아가는 <딱따구리 문고>와 <동서문고> 서가가 생겼을 땐 그걸 돌리면서 동생들이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매달 25일이면 잡지코너 구석에서 <소년동아>, <어깨동무>, <새소년>을 봤는데 6학년이 되어서는 엄마 몰래 <주부생활> 같은 것도 보고 안 팔리고 남은 잡지를 반품할 땐 부록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이 책 속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은 책들이다. 겨울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서점 닫을 때까지 구석에서 읽던 책들. 내가 읽은 책 중에는 여기엔 등장하지 않지만 <소공녀>, <소공자>도 있었고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것도 있었다. 나중에 커서는 프랑스 문학과 러시아 문학이 더 좋아졌지만 가만 돌아보니 어린 시절에는 영미 문화권 작품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 추억이 새록새록 좋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이것은 일종의 문화적 식민주의 아닌가 싶어 섬뜩해지기도 한다. 유럽 혹은 북미 어딘가 너른 마당의 목가적인 집들, 거기서 뛰노는 허클베리 핀이나 빨간머리 앤, 혹은 작은 아씨들에 대한 연민, 공감, 친근감 같은 것들이 내 핏톨에 흐르고 있는 것일까.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어쩌면 나 어린 시절 나도 모르게 일제 잔재 문화를 친근하게 ‘어린시절 문화’로 습득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들과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영화가 죄다 일본 것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약소국, 문화적 약소국의 반식민상태는 이지적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걸까?
문학을 전공했고 어지간한 문학작품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한베평화재단에서 베트남 참회여행을 다녀오느라 베트남 문학작품이며 동화들을 읽고 있는 남편을 옆에서 보면서도 베트남 문학은 읽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의 태도는 도대체 뭘까. 내 의식 속 깊은 곳에 문화적 식민주의와 사대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 학교 사서 선생님은 다른 말씀을 하신다. 동남아시아나 우리나라 문학은 역사적인 경험 탓에 아프고 참혹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들을 외면하게 된 것은 아니겠는가 하고. 그 말씀에 조금은 위로를 받는다. 죄책감을 더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주로 서구의 문학에 노출되어 저도 모르게 그것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독자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독서를 통해 추억을 소환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제 교육자로서 우리는 이런 문화적 불균형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누린 행복도 감사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의 독서를 안겨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과제를 품게 된 일도 고맙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