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체력 -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이영미 지음 / 남해의봄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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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혹은 신문에서 서평인지 광고인지를 보고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책이 오기를 꽤 기다렸던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방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정신적 활동을 더 중시하는 저질체력의 마흔 넘은 여자(나같은)를 운동의 세계로 이끄는평범하지만 놀라운 마법이 이 책에 있을 것만 같은 기대?

그가 첫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에디터로서 갈고 닦은 읽기, 글다듬기의 힘일 수도 있고 그 사람 안에 글과 말을 재미나게 다룰 줄 아는 재능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기가 직접 해본 일을 이야기하는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큰 동력이었을 것이다. ‘정말중요하고 정말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야기할 때의 가뿐 호흡, 신나서 이야기하는 반짝임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나의 기대에 부합하더냐고 물으면 아니, 라고 대답하련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강력한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모자란 열정에 불 지펴줄 것만 같은 기대가 있었지만, 미안하지만 그에는 미치지 못했다(적어도 나에게는). ? 저자가 이룬 성취가 너무 높아서 그렇다. 그가 정말 시작부터 평범한 사람이었고, 평범하나 닿을 수 있는 목표치에 올라선 정도였다면 우리도 , 그럼 나도 해볼래!’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누리는 신세계는 무려 트라이애슬릿의 세계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는 아무 것도 못하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던 그런 평범한 아줌마가 아니었다. 이미 부지런함과 열정을 갖추고 있던 사람이었다. 운동뿐 아니라 매사에.

 

운동을 힘겹게 시작하던 과정, 중간에 게으름이나 힘겨움 때문에 실패의 고비를 넘긴 이야기들을 같이 힘겹게 읽어나가면서 나 자신의 무기력이나 게으름에 대해 위안을 받아가며 같이 극복해 보고 싶었던 나는 중반에 접어들기도 전에 금방 철인3종으로 훅 뛰어넘어가는 이야기에 당황한다. 새벽 수영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랑말랑하다가 갑자기, 오늘저녁부터 동네 운동장을 단 한 바퀴라도 돌아볼까 하다말고 갑자기, 턴을 못 하고 다리가 땅에 안 닿아서 운동장 같은 데서 직진만 하던 자전거를 다시 타볼까 하는 생각이 싹틀까말까 하다 갑자기, 그녀는 한강에서 수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서 실망하다가 뒤로 가면서 저자의 인생역정을 읽다 보니 이 책은 슬슬 나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도 잘 키우고 직장생활도 잘 했고 제2의 인생도 잘해나가고 있단다. 저자로도 강사로도 잘나가고 있는 이유를 그녀는 아마도 운동 덕분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건강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었다는 맥락일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저자와 비슷한 또래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 난 뭐했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고대 동문들과 자전거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완주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좀 불편했다. 저자는 굳이 자신의 출신학교를 밝힐 생각은 없었겠으나 손미나와의 인연, 자전거 완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나온 명문대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주변에서 보면 명문대동문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열심히 동문 동아리 활동들을 하던데, 그렇게 열심히 모이는 이유가 우정 때문만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잘나가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우정을 쌓으면서 서로 이끌어주기도 하는 것,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이 불평등한 세상에 유능한 이들끼리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게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평범한 아줌마들은 이 책을 읽고 힘을 내기보다 자신의 삶을 초라하게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나만 그런 거면 다행이고.

 

그나마 궁시렁거리며 책을 덮는 나에게 남편이 그거 따라하지 말고 나랑 동네학교 운동장 돌러 나가자.’ 해서 토요일 새벽 5, 별을 보며 동네 한 바퀴 걸었던 거, 고맙게 생각한다. 덕분에 따릉이(서울시 자전거)는 안장을 최대한 낮추면 나 같은 키 작은 아줌마도 탈 수 있다는 걸 새벽 길거리에서 몰래 확인했다는 거, 고맙게 생각한다.

 

부러움에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지금 한창 육아 전쟁에 허덕이는 젊은 아기엄마들, 혹은 3,40대에 접어들었지만 이제 내가 슬슬 늙는 게 아닐까 불안해 지기 시작하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그녀들에게 이영미는 좋은 모범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저 언니보다 젊은 나, 지금부터 시작해도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로 하여금 책을 덮자마자 자전거를 꺼내들게 해달란 말이야, 하고 요구하는 것은 나의 칭얼거림에 불과하고 내가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책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의지박약용기부족의 문제일 뿐임을 나는 잘 안다. 이영미의 책 곳곳에 숨어 있는 유용한 팁들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만하다(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이라면 비싼 운동화 사서 책상위에 올려놓기, 운동한다고 소문내기, 운동장 한 바퀴부터 시작하기 등을 권한다거나, 프랭크처럼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운동도 소개한다거나). 그리고 분명 많은 이들이 이 책 때문에, 이 책 덕분에 몸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인생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을 게 분명하다고 본다.

 

그의 글쓰기 방식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끝난다.

 

그렇게 내 삶에 일어난 작은 균열은,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회 날에 시작되었다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소설적 발화 방식, 재미있지 않은가? 이와 비슷하게 어쩌구저쩌구..... 그 이야기는 3장에서. 이런 식으로 끝내는 부분을 보면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는 이 사람, 기질적으로 꽤 재미있는 이야기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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