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학교 노교사, 교육 희망을 보다 - 이원구 선생님의 교육에세이
이원구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10여 년 전,쯤 이원구 선생님을 뵌 적이 있다. 어느 잡지의 필자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나, 그 때 이미 연세가 있으셨던 그 분을 기자는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명망있는 사람을 보았다고 다가가 말 거는 주변머리가 아니었던 나는 그저 공손히 인사하고는 별 대화도 없이 식사를 마쳤던 것 같다.

그런 만남이긴 했지만 그 선생님의 책을 보자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기에 앞서 국어교사라는 면에서 그냥 막연한 친근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그분, 한 번쯤 보았다는 인연이 이 책을 이토록 반갑게 만든다면 참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무서운 거다.

책 안의 꽃 사진, 아이들 사진, 다 좋았지만 사실 앞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 텃밭을 가꾸려는 사람들은 더러더러 있겠지만 그 이야기로 책 한 권이 되랴 싶은 마음에 좀 불안했다. 불안하다는 것은 중반을 넘어서 책이 흐지부지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금은 민망해지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나는, 인쇄실 이기사 아저씨 이야기부터 흥미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처음엔 텃밭을 가꾸고 분양하고, 아이들이고 선생님들이 좋아하더라는 이야기 정도였다면 여기서부터는 지은이의, 풀꽃 사랑 뿐 아니라 사람을 들여다 보는 혜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텃밭을 통해 사람들의 성품과 심성을 헤어리는, 교사이자 시인인 그 마음, 말썽꾸러기도 나대는 아이도 수줍어 하는 아이도 텃밭에서 만나 그 심성을 어루만지는 이 분.

풀꽃에게도 속성이 있다. 자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잘난 꽃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무심하고 자기에도 무심한 녀석들도 있고 거칠도 드센 놈에 남 뒤에  숨고 남에게 사람의 시선 뿐 아니라 흙속의 물과 양분까지도 겸허히 양보하는 꽃들도 있다. 이원구 선생은 그런 풀들의 속성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양상과 사람들 사이의 권력다툼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락없이 이분은 교사라, 텃밭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수업에 풀꽃 이야기를 녹여낸다. 신화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풀어가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어렵사리 심거놓은 할미꽃도 말라 죽이고 여기저기서 얻어온 들꽃들을 구석쟁이에 몰래 심었다가 용인아저씨들이 뽑아버려도 찍소리도 못한 나는, 야외수업 때 얘들아, 이게 찔레꽃이고 이게 제비꽃이야, 라고 그나마 화단에 자라고 있던 식물들로 남자아이들에게 정성껏 다가갔다가 "그저 밥이나 좀 먹었으면" 싶은 강아지같은 시커먼 눈망울을 멀뚱이는 아이들 때문에 조금은 허망했던 나. 텃밭을 저희들 스스로 가꾸고 들여다보며 크는 여자 아이들과 신화와 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참 정겹고도 부럽다. 그리고 그 대화체 수업을 그대로 옮긴 장면 자체가 참 좋았다. 일부러 준비하지 않은 남의 수업을 살그머니 들여다 보고 배운 느낌이 들어서...

우리 학교에도 몇 년 후 정년을 앞둔 선생님들이 계시다.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멀어져 가고 학교의 모든 행정과 업무와 책무에서 멀어지는 외로움과 막상 그 일들을 해낼 때의 두려움으로 존경받아야 할 그 분들은 남은 시간을 있는듯 없는듯 고요히 보내려 하신다. 이원구 선생님의 학교생활에도 그런 느낌은 없지 않다. 아이들과 대화는 점점 통하지 않게 되는지도 모른다. 당신 스스로는 사회적으로도 결코 보수적이지 않으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노교사의 보수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30여 년을 몸에 익힌 교육자적 훈구성이 없다 할 수 없다(20년도 채 안된 나에게서도 스스로 그런 태도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걸핏하면 훈계하려 들고 교육적인가 아닌가 재단하고, 일러주어야 속이 풀이는 까다로워지는 속성)  그러나 이 책은 선생님의 그런 모습까지도 숨기거나 가식적으로 꾸미지 않아서 더 좋았다. 어쩌면 지은이는 조금 예민하고 까다로운 선생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느낌과 그런 성품이 글 속에 여기저기 보인다. 대개의 글쟁이들은 글로써 자신을 멋진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데 능하다. 한마디로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작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그것은 내가 글을 쓸 때에도 발견되는 나 자신의 혐오스러운 모습이기에 더더욱 싫어하기도 하는데 이 분 글에는 그게 좀 덜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요즘 가벼이 나온 책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앞부분 괜찮다가 뒤로 갈수록 함량이 떨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그런 느낌으로 끝까지 읽었다. 그 기분도 참 괜찮다. 뒤로 갈수록 세월이 갈수록, 더 괜찮아지는 책, 사람, 인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교육은 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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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로 갈수록 더 괜찮아지는... 모든 게 그랬으면 좋겠어요.
님, 리뷰 언제나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