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게 길을 묻다 - 트라우마를 넘어선 인간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서
고혜경 지음, 광주트라우마센터 기획 / 나무연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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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나 세월호는 마음에 새겨진 문신 같다. 책에서만 배운 4.19와는 또 다른 아픈 기억이다. 나는 중학교 때 소위 유언비어로 광주를 만났고 대학 1학년 때 사진전으로 광주를 만났다. 간접적인 경험이었지만 그 아픔은 역사적 유전자에 새겨져 버렸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과 더불어 죽을 때까지 이 각인을, 이 낙인을 풀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직접 겪은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이 책은 직접 광주를 겪은 사람들의 꿈 분석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융의 꿈 분석심리학에 바탕을 둔 치료의식이자 사회적 기록이기도 하다.

 

고혜경은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베트남 참전용사라 써 붙인 노숙자가 없는 이유를 한국의 가족주의가 전쟁의 상흔을 가족 안에서 치유시켰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사회적으로 참전용사가 반사회적으로 인식된 미국과, 박정희 군부정권에 의해 칭송받았던 한국 사회의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사회적 사고는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지만 어떤 사회문화 속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현명하게 극복할 수도, 오히려 더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월남전 참전의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겠지만)

 

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리 상태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래서 내 꿈을 되새겨 보는 일도, 남의 꿈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남의 꿈을 듣는다는 것은 가슴으로 듣는 것이어야 한단다. ‘내 꿈이라면’, ‘내가 상상해 본다면이런 마음으로 듣는다. 꿈을 해석해 주려거나 조언하려 들지 말라고 한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 중이 이런 것이 있었다. 광주의 트라우마를 가진 내담자 중에는 꿈에 귀신을 자주 보는 이가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꿈에 나타나는 귀신은 내 안의 어떤 에너지, 한의 응어리 같은 것이라고 한다. 고혜경은 꿈 속 귀신에게 말을 걸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라 한다. 그러면 두려움이 순화된다고. 나는 귀신을 자주 보진 않지만 나쁜 남자에게 쫓기는 꿈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린아이를 자주 보곤 하는데 이 대목을 읽은 후 그들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들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새벽마다 꿈에서 깨어나면 꿈을 곱새기는 시간을 꼭 갖는다. 그때마다 그들의 정체는 내 안의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것이 공포든 불안이든 죄의식이든, 나의 것이기 때문에 모두 안쓰러운 것들이다.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이 보인다. 어떤 것은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짊어지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그러니 꿈에 등장하는 무서운 존재들을 쫓아낼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광주를 겪은 이들, 세월호를 겪은 이들 앞에 나의 그림자는 새발의 피일 뿐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지난일로 치부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광주의 묻힌 이야기들을 들춰 다 들어줘야 한다. 죗값을 치르지 않은 이들은 지금에라도 감옥에 가야 한다.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의 억울함은 이미 이생에서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일지 모르더라도, 적어도 그 시신을 찾아 해원하고 그 원혼에게 세상의 미안함을 충분히 보이는 일은 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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