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30407.html

 이 세상에는 몸 둘 곳이 없었을까? 무대 밖으로 영원히 몸을 숨긴 배우의 죽음을 수사한 경찰은, “(음주 후) 충동적인 자살”이라고 최종 발표하였다. 이유는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자살 사건의 90% 이상이 비계획적이지만, 그것이 곧 ‘충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 잘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충동’이라는 표현은 죽음을 선정적으로 수사(修辭)할 뿐 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가로막는다.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는 자살은, 질병의 경과점 혹은 투병의 과정으로서 자살이다. 예전에 어느 신문에서 방한한 외국 가수를, “한때 우울증에 빠져 방황했지만 재기했다”고 소개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에 빠져? “빠져”는 자발적 탐닉이라는 의미로 대개 마약, 알코올, 도박 등과 결합하여 사용된다. “당뇨에 빠져”, “암에 빠져” 이런 말은 없다. 정신적 불편함(mental disease), 흔히 말하는 ‘정신병’은 몸도 마음도 편안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육체적인’ 질병과 다르지 않다. 우울증은 독감이나 교통사고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질병’으로 인구학적 특징이 ‘없다’.

 우울증에 대한 일반적 통념은 “누가 진짜 미쳤는지”를 생각하게 할 만큼 대단히 모순적이다. 우울증은 결정권(권력)이 많은 기업의 리더처럼 스트레스와 관련 있다는 인식도 있지만, 반대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사치스런 병이라는 통념 역시 집요하다. 이를테면, ‘일하는 건강한 민중’은 우울증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 편견의 효과는 단 하나, 아픈데 돈 없는 사람들이 넘어서야 할 정신과 병원의 문턱만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아픈 이가 누구냐에 따라 우울증은 다르게 인식된다. 천재나 예술가의 우울증은 예민한 재능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평범한 사람의 우울증은 경쟁 사회에서 낙오한 이들의 나약함으로 간주된다. 감기라는 비유처럼 가벼운 증상으로 치부하면서도, 우울증 병력자나 환자는 비정상, 비이성, 잠재적 폭력범 등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공포가 있다.

 이런 모순된 인식의 배후에는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해(利害)관계와 담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양가적 인식들의 공통점은, 우울증에 대한 무지 그리고 이 무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무지를 자신은 그만큼 ‘정상’이라는 증거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울증이 자살로 연결될 만큼 고통스러운 질병이라는 것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의미를 넘어 ‘패가망신’, ‘인생 실패’, ‘참극’ 등 과도한 낙인을 안게 된다. 새삼 지금 한국 사회의 자살사태(沙汰)를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자살을 예방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살 권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고, 또 하나는 자살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다. 두 가지는 병행되어야겠지만, 나는 후자가 좀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이는 우울증의 고통을 “살아 있는 죽음”으로 표현한다. 나는 자살에 관한 사회적 대책이 자살을 생명과 대립시키는 ‘자살 방지 캠페인’에서, 우울증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이냐 죽음이냐가 아니라, 고통이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은 다른 질병에 비해 위로, 간병받지 못한 병사(病死)일 뿐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통증의 해결이지 죽음 자체가 아니다. 자살은 ‘생명 경시 풍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생명의 고통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처방전이다. ‘병사로서의 자살’은 자살에 대해 관대해지자는 주장이 아니라 예방책에 대한 논의이다. 한때 죽고 싶을 만큼 아프고 괴로웠다는 병력이 이후 인생의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고통이 조금이라도 소통될 수 있다면, 자살은 줄어들 것이다. 최소한 지금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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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아버지의 재산이 가족 제도를 통해 자식들에게 전이되는 것에 주목해 일부일처제 결혼이 사유재산과 관련된 사회제도이자 여성 억압의 근원이라고 봤다. 가정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남편은 유산계급(자본가)이고 아내는 무산계급(노동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의 위치는 남편 성욕의 배출구이자 자녀 출산의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 연구를 통해 "결혼이 선물 교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분석했다. 이런 경우 가족 간 혹은 부족 사이에 교환되는 선물은 여성이고 교환의 당사자들은 남성이다. 남자들은 상호 간에 여성을 교환하면서 친족 관계나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경제적, 성적 종속을 보고 결혼을 '합법적 매춘'이라고 비판했고 시몬느 드 보봐르는 결혼이 여성을 노예화한다고 봤다. 여자들이 결혼으로부터 얻는 것은 "야망과 정열이 없는 번지르르한 평범함, 무한히 반복되는 목적 없는 나날들, 삶의 목적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 없이 죽음을 향해 부드럽게 흘러가는 인생살이"일 뿐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결혼제도를 거부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합법적 매춘'이란 정의는 신랄하지만 어느 선의 진실을 내포한다. 물론 바로 이점 때문에 초기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장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경제력과 더불어 성적 역할이라고 불리는 가사와 육아라는 3중고를 짊어지게 했다.

 여성들이 3중고를 거쳐 얻은 경제력은 성별에 따라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해왔던 육아와 가사 노동이 변형된 형태의 일을 한다. 물론 의사결정이나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서 일을 하는 여성도 있지만 비율면에서 저조할 뿐 아니라 그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받지 않는다. 부양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것에 비해 남성들은 가정으로 진출하지 않는다. '결혼이 매춘'이 되려면 여성은 어떤 조건도 없이 생활비와 성적 관계를 교환해야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물론 개개의 성매매에서 교환되는 것의 종류에 대해선 논외로 하고) 도리어 여성은 남성들이 드러내기 꺼리는 감정에 대한 보살핌이란 감정노동과 가사, 육아 노동을 병행해야 한다. 결혼의 조건이 단순하게 돈과 여성의 몸으로 교환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리어 '결혼은 매춘이다'에는 여성의 성적 의사 결정과 생활비로 환산된 남성의 노동 외의 감정, 육아, 가사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시각이 담겨 있다.

 여성이 결혼 안에서 수행하는 노동들은 반복적이고 성취감을 주기 힘들다. 만족감을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구조다. 적성에 맞아서 한다면야 여성 본인도 행복하겠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잘 할 것을 기대하고 기대만큼 해내야하는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지루하고 흥미롭지 않은 가사.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통해 가사의 영역은 서비스를 교환하는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가사에 관한 사항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 내의 일은 응당 여자가 해야할 일로 인식되고 있다. 가정은 스위트 홈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퇴근 시간 없는 일터인 것이다.

 그렇다고 아우라 한참 떨어진 가부장의 기득권을 지닌 남성들이 행복한건 아니다. 그들 역시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과 노동으로 소진되는 삶을 가정 안 혹은 외의 공간에서 해소하며 밤낮으로 어딘가에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 삶 역시 퍽퍽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정에 있는 여자는 여자대로,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자대로 피곤하다. 피곤할 때는 피로 회복제가 아니라 좀 더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왜 4-5시간씩 일하면 안 될까(OECD 국가 중 한국은 근무 시간이 제일 긴 것치고, 업무 성취율은 최하위다.) 왜 학교에선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방과 후에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같이 놀아주는 보육 교사를 두지 않을까.(돌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지만, 학생중 극히 일부분만 이용할 수 있다.) 혼수며 집은 자기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건데 왜 부모님이 준비를 해줘야하나(고부 갈등의 다양한 이유 가운데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것과 감정노동의 영역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왜 결혼 말고 동거나 공동체는 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할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직까지 개인은 각개약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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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모성에 관한 그녀의 의견만 빼면 저는 동감하는 편입니다.

Arch 2010-07-15 11:49   좋아요 0 | URL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결혼을 '합법적 매춘'이라고 한 역사적 배경에는 저 역시 동의해요. (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foreign/2730) 모성에 관해선 그녀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잘 모르겠어요.
 

http://www.yes24.com/chyes/ChyesColumnView.aspx?title=005009&cont=1581

 듀게에 갔다가 이 분이 예스에서 칼럼을 쓴다는걸 알았다.

 엄정화를 다른 누구보다 참 좋아하는데 9집을 들으며 그 맘이 좀 더 깊고 단단해졌다. 바람의 노래는 글쓴 분 말처럼 중독성이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같은 춤은 어떻게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어어'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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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로 갈지, 버스를 탈지 정하지 않았다. 시내 버스 시간이 맞으면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가고, 좀 걷고 싶으면 걷다가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우린 여행의 테두리를 이처럼 헐렁하게 그어놓고 출발했다. 옥찌들과 나는 모자를 쓰고, 가방을 짊어졌다. 터미널에서 버스가 많이 다니고 버스를 조금만 기다려도 될만한 장소를 찾아봤다. 부안이 적당했다. 부안에 간다니까 옆에 있던 검표하는 아저씨가 시골 동네에 가서 뭐하냐며 웃으신다. 뭐하긴요, 여행을 한다니까요.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 좋은 건 자기 어디 갔다 왔다고, 무엇을 보고 뭘 먹었는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체득하는 질문과 충족감, 혹은 배반된 기대를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데 있었다. 
 
 보통의 책만큼이나 굴러쉬 브런치도 그랬다. 자고로 여행서가 갖어야할 필수적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여행 경로와 맛집, 볼거리는 적당히 원경으로 처리하고 취향과 근사한 대답에 귀를 기울일줄 아는 작가라니. 동유럽을 가고 싶은 맘만큼 그녀답게, 혹은 그답게 여행을 하고 싶은 맘이 더 컸다.
 그래서 우리도 여행을 떠났다. 물론 의욕한만큼 잘 해내고, 잘 마쳤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여행이 아니라면, 삶은 언제나 나에게 부당한 업신여김을 당해왔다. 익숙함이 낳은 무례함이란 사생아, 권태, 생계형 짜증, 줄줄이 매달린 의무들,-굴러쉬 브런치 중-) 만만한 마누라에게 온갖 성질을 다 부리는 못난 마초 같은 내게 필요한건 마누라가 아니라 여행일지도.

 차를 갖고 간다면 40분 남짓한 거리를 차를 기다리고 만경과 김제까지 거쳐서 가는 바람에 부안에 도착할 때는 거의 점심이 다 됐다. 터미널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에 사람들에게 부안에서 가볼만한데를 물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은 친절하다. 그들은 내게 없는 관대함을 발휘해 아이들이 힘들지 않은 코스까지 자세히 안내해줬다.
 곰소는 어때요, 거긴 젓갈 천지지.
모항은요? 차가 별로 안 다녀서.
아이들 데려왔으니까 원숭이 학교 가봐요. 음, 그렇게 왁자지껄한 곳은 싫은데.

 떠나기 전에 옥찌들과 약속했다. 너무 많이 걷지 말자고. 나 역시 내 욕심대로 한다고 무리하게 일정을 짜지 않고, 아이들에게 많은걸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서로가 좋아할만한 곳을 가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물원이 싫었다. 동물원 자체의 황폐한 느낌과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싫다. 게다가 원숭이 학교라면 진화의 스파크가 약간 차이 난 덕에 자신들보다 진화된 누군가에게 재롱을 피우는 곳이 아닌가. 영 꺼려졌다.

 우선 내소사를 가서 직소 폭포를 보고, 격포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터미널 앞에는 오로지 변산 근방에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차들이 꽤 있었다. 부안의 진면목은 버스 안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창문을 열어놓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는 것만큼은 근사했다. 줄포에서 정차한 버스는 다시 출발하는걸 까먹은 듯 아주 오랫동안 쉬었다. 정류장에 내려 마을 개들과 교감하며 그들 생이 복날에서 끝날지 좀 더 지속될지에 대한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버스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버스(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보들레르처럼 소리 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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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책 없는 여행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10-11-28 16:31 
       버스는 쉴 만큼 쉬고, 사람들이 탈만큼 타자 다시 사람들을 태워 내소사로 향했다.  속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골 버스를 권한다. 하루에 몇 대 밖에 없는 버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굽이굽이 돌아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도착한 것만으로 감지덕지, 황송한 맘이 생길 것이다. 도착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한 시간,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그 사이에 어떤 얼굴을 스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락방 2010-07-11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나는 동물원을 좋아하는데요. 맹수를 보는게 좋아서요. 늑대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과천서울대공원에 간 적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안에 갇힌 늑대는 좀 힘이 빠져있어서 내 기대와는 달랐죠.
나는 호랑이를 보고 사자를 보는게 좋아요.

조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이모라니, 멋져요! 게다가 취향과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하는 그런 이모와의 여행이라니. 조카들은 자신들이 행운아라는걸 알까요.

이 페이퍼 좋아요, Arch님!

Arch 2010-07-11 17:38   좋아요 0 | URL
맹수들에게 동물원은 쥐약이죠. 아, 다락방은 늑대를 좋아하고, 조제는 호랑이를 보고 싶어하고.
나도 다락방 페이퍼 보고 그 단편이 보고 싶어 도서관에 책 신청 했어요.

아, 조카들은 오늘 종종 제게 천덕꾸러기였어요. 주말에 애들은 왜 쉬지 않고 놀자고 하는걸까요

순오기 2010-07-14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이렇게 떠나는 여행 좋아하는데...
만경 김제 거쳐 부안까지라니~~~~~~아치님은 너무 좋은 동네에 산단 말에욧~!
내가 옥찌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부러워서 치를 떨어요.ㅋㅋ
부안 내소사는 못 가봤지만 채석강이랑 격포 해수욕장은 가봤네요.
매창뜸에 가보고 싶어요~~~

Arch 2010-07-14 09:5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담양이며 영광(먼가?) 무등산까지 손만 뻗으면 있잖아욧! ^^
내소사는 굳이 안 가봐도 돼요, 물론 가을에 단풍이 징하게 예쁘긴 하고, 전나무 숲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만.

매창뜸은 어딘가요?

순오기 2010-07-15 22:44   좋아요 0 | URL
매창의 무덤이 있는 곳을 매창뜸이라고 한대요.
부안군청에서 문화예술회관 쪽으로 직진한 뒤, 다시 좌회전하면 그 곳이 매창뜸이랍니다.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김현아/호미)188쪽에 요렇게 나왔어요.^^
아치님, 언제 시간 나면 매창뜸에 가서 사진 찍어 올려줘요~

Arch 2010-07-15 23:31   좋아요 0 | URL
무덤을 뜸이라고 하다니, 신기한데요.

사진이요? 싫어요. ^^ 순오기님이 가셔서 저보다 백배는 멋진 사진이랑 글 올리시는게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더 좋을 것 같아요. (뭐래^^)

순오기 2010-07-16 00:33   좋아요 0 | URL
하하하~ 아치님이 싫다고 하면...
음, 차 있는 누군가를 꼬셔서 한번 가보도록 해야지요.^^
 

 친구랑 새로 생긴 국수집에 가서 국수를 먹고 누룽지 짬뽕에 사케를 마시는 중이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얘기가 지루할 일도 없었고, 국수의 매운 육수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때 뭔가 눈길을 화악 잡아끄는게 있었다. 저건 뭐지? 10시 방향에서 어떤 남자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끔 이 동네에도 괜찮은 남자 한둘쯤 지나가긴 한다. 자석으로 잡아끌 듯 쭉 시선을 사로잡는, 인간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켰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꽃남들 말이다. 도서관에도, 술집 거리에도 가끔씩 진을 치다보면 나타나는 예쁜 사람들. 예쁜걸 좋아하는건 미디어의 비현실적인 수준과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미의 기준으로 삶의 고단함을 더 가중시키려는 수작이란걸 모르는건 아니다. (웃기는군) 그렇지만, 그렇지만 탐미주의자가 아님에도 예쁜 여자 남자를 보고 눈길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행동거지 하나하나 거울을 보면서 예뻐보이는 연습을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아하다. 얼굴만 예쁘장하다고 꽃남일 수는 없는거다. 그날 봤던 남자가 딱 그랬다. 매끄러운 얼굴과 단발보다 조금 긴 머리를 가끔씩 쓸어내리는 길고 곧은 손, 흰 티셔츠 하나로 완성된 듯 보이지만 세심하게 신경썼을 법한 패션까지. 꽃남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 밤에 남자를 볼 수 있는 각도에 앉을 수 있었던건 정녕 행운이었다.

 행운은 그 속성상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 밤의 기억은 차츰이랄 것도 없이 옅어졌다. 그런데 오늘 작가 레지던스 오프닝 행사를 보러 갔다가 이 남자를 다시 만난거다. 

 낮에 봐도 당신은 어쩜 그렇게 예쁜가요.

 남자가 웃는다. 치열이 고르다. 남자가 옆 사람에게 말을 건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다정다감하다. 온통 그 남자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캐비넷 전시는 뒷전으로 미루고 이 사람이 어디에 있나 두리번 두리번. 그러면서도 이렇게 값싸게 찾다간 값어치 없는 관심으로 전락할거란 나름 같잖은 생각도 하느라 그와 눈이 마주칠 때면 괜히 시큰둥 해보이고. 뭐 암튼 그랬다. 나란 여자 없어보이는 여자.

 행사 한참 무렵에 목욕탕 신발장으로 쓰이던 캐비넷으로 같은 물건 들어있는 번호 맞추기 게임을 했다. 30개나 되는 번호에다 기억력 가물가물한 한낮에 사람들 모아놓고 할만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한정판 부채를 타기 위해 열심이었다. 나도 적극적으로 번호를 불러대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번호를 알려주는거다. 노름판에 타짜가 신입에게 기술을 전수하듯 소근거리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을까. 꽃남은 자기가 물건 넣을 때 있었다며 그 번호가 확실하다는 말을 하며 나를 쳐다봤다.

 선물로 받은 책을 갖고 나오는데 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기도 책 받고 싶었는데 자기는 주체측이라 어쩌고 저쩌고. 얼굴에 살짝 주름이 있네, 어디 하나 특별히 예쁘지 않은데 참 예쁜 사람이네, 그리고, 그리고

 만화였다면 그가 다가와 말을 거는 순간 바닥에 누워서 으앙으앙 부앙부앙 게거품 물고, 뭐 이런 그림이라도 가능할텐데 나는 만화 속 밝고 희망찬 소녀가 아니라 아치인지라 가만히 웃는걸로, 가볍게 인사하며 안녕하는걸로 끝맺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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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11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보고 쓰러짐)

가볍게 인사하며 안녕하는걸로 끝맺어야 하다니, 아웅, 살 빠진 Arch는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요! 물론 살 빠지기 전의 Arch도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흐음 그렇지만 나였어도 딱히 어떤 액션을 취할수 없었을 것 같아요. 뭘 대체 어떻게 한담? 연락처 줄까요? 연락처 줄래요? 시간 있으면 커피나 한잔? 아아아아 정말이지 그 어떤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나 역시 가볍게 인사하며 안녕하는걸로 끝맺어야 했을거에요. 나란 여자, 수줍음이 많은 여자. 흑.

새벽이에요, Arch!

Arch 2010-07-11 17:4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가만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눈치 안 주고 가만히 있어야해요. 이 좁은 동네에서 다시 만날 확률을 기다려보는거죠.

다락방은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