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아버지의 재산이 가족 제도를 통해 자식들에게 전이되는 것에 주목해 일부일처제 결혼이 사유재산과 관련된 사회제도이자 여성 억압의 근원이라고 봤다. 가정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남편은 유산계급(자본가)이고 아내는 무산계급(노동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의 위치는 남편 성욕의 배출구이자 자녀 출산의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 연구를 통해 "결혼이 선물 교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분석했다. 이런 경우 가족 간 혹은 부족 사이에 교환되는 선물은 여성이고 교환의 당사자들은 남성이다. 남자들은 상호 간에 여성을 교환하면서 친족 관계나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경제적, 성적 종속을 보고 결혼을 '합법적 매춘'이라고 비판했고 시몬느 드 보봐르는 결혼이 여성을 노예화한다고 봤다. 여자들이 결혼으로부터 얻는 것은 "야망과 정열이 없는 번지르르한 평범함, 무한히 반복되는 목적 없는 나날들, 삶의 목적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 없이 죽음을 향해 부드럽게 흘러가는 인생살이"일 뿐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결혼제도를 거부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합법적 매춘'이란 정의는 신랄하지만 어느 선의 진실을 내포한다. 물론 바로 이점 때문에 초기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장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경제력과 더불어 성적 역할이라고 불리는 가사와 육아라는 3중고를 짊어지게 했다.

 여성들이 3중고를 거쳐 얻은 경제력은 성별에 따라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해왔던 육아와 가사 노동이 변형된 형태의 일을 한다. 물론 의사결정이나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서 일을 하는 여성도 있지만 비율면에서 저조할 뿐 아니라 그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받지 않는다. 부양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것에 비해 남성들은 가정으로 진출하지 않는다. '결혼이 매춘'이 되려면 여성은 어떤 조건도 없이 생활비와 성적 관계를 교환해야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물론 개개의 성매매에서 교환되는 것의 종류에 대해선 논외로 하고) 도리어 여성은 남성들이 드러내기 꺼리는 감정에 대한 보살핌이란 감정노동과 가사, 육아 노동을 병행해야 한다. 결혼의 조건이 단순하게 돈과 여성의 몸으로 교환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리어 '결혼은 매춘이다'에는 여성의 성적 의사 결정과 생활비로 환산된 남성의 노동 외의 감정, 육아, 가사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시각이 담겨 있다.

 여성이 결혼 안에서 수행하는 노동들은 반복적이고 성취감을 주기 힘들다. 만족감을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구조다. 적성에 맞아서 한다면야 여성 본인도 행복하겠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잘 할 것을 기대하고 기대만큼 해내야하는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지루하고 흥미롭지 않은 가사.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통해 가사의 영역은 서비스를 교환하는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가사에 관한 사항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 내의 일은 응당 여자가 해야할 일로 인식되고 있다. 가정은 스위트 홈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퇴근 시간 없는 일터인 것이다.

 그렇다고 아우라 한참 떨어진 가부장의 기득권을 지닌 남성들이 행복한건 아니다. 그들 역시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과 노동으로 소진되는 삶을 가정 안 혹은 외의 공간에서 해소하며 밤낮으로 어딘가에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 삶 역시 퍽퍽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정에 있는 여자는 여자대로,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자대로 피곤하다. 피곤할 때는 피로 회복제가 아니라 좀 더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왜 4-5시간씩 일하면 안 될까(OECD 국가 중 한국은 근무 시간이 제일 긴 것치고, 업무 성취율은 최하위다.) 왜 학교에선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방과 후에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같이 놀아주는 보육 교사를 두지 않을까.(돌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지만, 학생중 극히 일부분만 이용할 수 있다.) 혼수며 집은 자기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건데 왜 부모님이 준비를 해줘야하나(고부 갈등의 다양한 이유 가운데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것과 감정노동의 영역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왜 결혼 말고 동거나 공동체는 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할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직까지 개인은 각개약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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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모성에 관한 그녀의 의견만 빼면 저는 동감하는 편입니다.

Arch 2010-07-15 11:49   좋아요 0 | URL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결혼을 '합법적 매춘'이라고 한 역사적 배경에는 저 역시 동의해요. (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foreign/2730) 모성에 관해선 그녀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