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가 선생님이 에어컨 때문에 춥다고 긴팔티를 가져오랬다며 우리는 왜 에어컨이 없냐고 묻는다. 우린 선풍기가 있다고 했더니 지희는 반에서 에어컨 없는건 자기밖에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북극곰 이야기는 더 이상 안 먹히니까 지희에게 다른 말을 해줬다. 지구가 점점 더 따뜻해지면 다른 나라 사람이 사는 곳이 물에 잠길지 몰라, 집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더 더울거야. 지희는 날 미덥지 못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 그래도 다른 사람들 다 에어컨 틀면 우리 혼자 이러는게 무슨 소용이야.
- 지희야 R님도 있고 누구도 있고, 또 누구도 있어. 우리만 이러는게 아니야.
방송에서는 연일 폭염주의보가 나온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추위에는 약해도 더위는 강한 체질인줄 알았는데 올해는 영 맥을 못춘다.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낸다. 가만히 누워 이게 한증막이려니 생각한다. <--최근에 찾아낸 정신 승리법? 돈 주고도 땀 빼는데 이 정도쯤이야라고 맘 먹으니 되려 덜 더운게 아쉬울 정도라고 하는건 나님 꽤 오바하는 것임.
몇주 전까지 에너지 절약한다며 에어컨을 틀지 않던 사무실도 은근슬쩍 에어컨을 트틀어댄다.(오타인데 맘에 들어 놔둔다) 밖에 나갔다 사무실로 들어오면 살짝 춥다. 사람들은 출근하자마자 마치 자석에 끌린 듯 부리나케 에어컨을 틀어댄다. 잠깐이라도 덥거나 땀이 나면 큰일나는줄 안다. 나는 에어컨 바람이 싫다. 나로선 여름이니 좀 더워도 괜찮은게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그나마 정부에서 전기세를 올릴 명목으로 '우리가 많이 썼으니 많이 내야지'란 의식화 교육이라도 시키는 듯 '에너지 절약' 운동을 해서인지 요새 음식점이나 가게에 들어가면 작년보다는 덜 춥다. 얼마나 가겠냐 싶지만.
지구 온난화 얘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들어왔다. 그럼에도 아주 먼 이야기 같다. 일다의 기사는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은 일들이 기후 조건이 악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094%C2%A7ion=sc3
지구 온난화가 없었더라면 그런 범죄가 일어났을까. 여름답지 못한 선선한 상태로 사는게 잘 사는걸까. 리모컨 하나만 누르면 당장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간편하고 놀랍도록 혁신적이다. 바람은 인공적이고 금세 몸을 차갑게 식힌다. 나무만 조금 있다면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올텐데. 더위를 이기고 견디는게 아니라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죄책감과 당위만으로 가능할까. 여러 의문들이 머리를 콩콩 두드리는 살짝 후덥지근하지만 지낼만한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