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a랑 섬에 놀러가려고 했다. 준비래야 교통편 알아본 게 다였지만 차비가 많이 나오니 컵라면 흡입으로 끼니를 때워야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더랬다. 월요일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섬엔 다음에 가기로 했다. 흐리던 하늘에서 비가 내린 건 수요일이었다. 결국 배가 못 뜨면 어쩌나, 비가 와서 기대했던 섬의 정취를 못 느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모처럼 길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내나 했는데 아쉽게 되고 말았다.
그날 a와 나는 좀 일찍 일어났다. 새벽 수영반인 우리는 평소엔 니가 먼저 일어나라, 내가 먼저 일어나서 내뺀다 어쩌면서 티격태격하곤 했는데 그날은 쉬어서 그랬을까, 잠깐 눈 감고 있었던 것처럼 쉽게 눈이 떠졌다. 누룽지에 남은 반찬을 싹싹 긁어먹고 터미널로 갔다. 전에 h시를 갔을 때처럼 눈에 띄는 곳, 금방 갈 수 있는 곳을 찍었다. 차 안에서 꼬박 한숨을 자고 일어나니 D시였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쫄깃한 찰옥수수를 사서 나눠먹으며 푸조 나무가 우거진 강둑을 걸었다.

여름이 되면 평상에 앉아 뒹굴 대면 참 좋겠다. 한차례의 축제가 지나간 끝물, 조악한 시설물과 무리한 공사로 이곳저곳이 파헤쳐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여름에 왔을 때 맑고 시원하게 흐르던 강물은 죽어 있었다. 그냥 놔두면 좋을텐데 왜 이렇게 인간의 손을 타게 하려고 안달을 하는지 모르겠다.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거나 좋은 산을 아스팔트로 덮으려고 할 때마다 참 속상하다. 자연이 언제부터 인간이 원하는대로 조물딱거릴 수 있는 찰흙 덩어리가 됐던가. 최소한의 간섭만 해도 그 풍요로운 품에서 쉬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올텐데. 경박한 미관 정비는 찾아오는 사람들의 맘 씀씀이까지 형편없게 만드는 것 같다.

강둑에서 샛길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새로 지은 집도 있었지만 몇 개의 빈집이 보였다. 빈집. 아무도 살지 않고 돌보지 않은 집에는 잡풀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근방에서 항아리를 옮기는 할머니께 이 집에 주인이 있냐고 여쭸다. 시골 할머니들이 으레 그렇듯 있다 없다 대신 다른 얘기를 하실 줄 알았는데 군청에서 다 사들였단 얘기를 해주셨다.
- a야, 이런 집에서 살면 어떨까.
- 아치는 산다고 하겠지만 얼마 안 돼 싫증낼걸.
이렇게 덩쿨이 우거지고, 사철 내내 나무들이 다른 모습을 보여줄텐데 쉬이 싫증을 낼까. 역시 모를 일이다.

맞은편 마을에 갔더니 국수집이 있었다. ㅇㅇ국수란 이름의 상호를 참 오랜만에 봤다. 파전에 동동주랑 잔치국수를 먹었다. 시장은 최고의 반찬이라 우리는 무척 야무지고 맛있게 먹었다. 자랑하고 싶어서 사진을 올려본다. 마침 지금 딱 배고플 때다!(악랄한 미소, 으흐흐.... 나도 배고프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D시에 간다면 이 국수집을 알려줄 생각도 있다. 물론 D시엔 국수거리가 따로 있어 내가 갔던 곳이 아니더라도 다른 국수집에서 그 가게만의 국수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가게에서라면 5살짜리 꼬마가 요요를 하며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 나를 건들면서 왜 a처럼 자기랑 놀지 않냐며 바보 똥개라는 말을 하는걸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난 그동안 그 아이의 그 시선과 몸짓이 그리웠다. 그런 사람이라면 한번쯤 심부름도 잘하고 어린이집은 맘 내킬 때만 가는 이 꼬마를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