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베이터를 탔다. 초등학생 몇 명도 같이 탔다. 5학년 정도 돼 보이는 남자 아이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꾹 누른다.
-닫힘 버튼 안 눌러도 되는데.
-그런데요
-아니 그렇다고.
-그래서 어쩌라구요. 

 헐~ 이놈의 오지랖은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참견을 했을까. 아마도 그런 말을 건네면 상대방이 살짝 웃거나 수줍어할거라고 생각했겠지. 어른에게라면 차마 말 건넬 엄두도 못냈을텐데.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날이 섰을까. 엘리베이터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이 있는걸까. 아니면 어른들 머릿속에서 나오는 질문이야 나이와 이름을 묻는 것 뿐인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대뜸 참견을 하니 별꼴이야 싶었을까. 엘리베이터 타는 게 아니었어, 참견하는 게 아니었어, 다짜고짜 반말하는 것도 별로였어. (징징징)

뾰로롱~ (그 다음 반전 혹은 웃긴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 최근에 새로 오신 과장님은 칭찬을 자주 한다. 화이트보드에 내가 쓴 월중 행사표 글씨가 당신 맘에 쏙 든다고, 보도문 조금 손 봤을 뿐인데 문장력이 대단하다고(정말 처음 듣는 소리다, 이상하게 꼬인 문체란 소린 종종 들어봤지만), 겨울 내내 입은 칙칙한 옷 대신 색깔 있는 옷을 입어 아치 때문에 봄 분위기 난다고, 잔소리 들으며 차 심부름하기 싫어서 누군가 오면 반사적으로 커피를 타다 바치니 눈치 있다고. 과잉이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자꾸 듣다보니 기분도 좋아졌다. 이쯤에서 칭찬을 할텐데라고 기대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
과장님의 화끈한 면모만큼이나 누군가를 알아보고 칭찬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할 즈음이었다. 과장님 책상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데 모니터 옆에 무슨 글귀 같은게 보였다. 뭘까, 과장님은 무슨 글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할까.

글을 읽고 나서 얼굴이 벌개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글엔 다음과 같은 말이 써있었기 때문이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 다른 과의 인상 좋은 C가 사무실 B에게 준 매실차는 ‘같이’ 먹으라고 준거였다. 그래서 열심히 같이 먹었다. B는 내가 탕비실을 드나들 때마다 매실차를 먹나 안 먹나 (아, 쓰면서도 추접스러워서 원) 유심히 지켜봤나보다. 그러더니 사내 메신저로 매실차를 준 분께 냉큼
- 아치가 내꺼 매실차 다 먹어.
이러더란다. C는 B가 꼭 고자질하는 6살짜리 꼬마 같았다고 했다. (참고로 B의 나이는 50이 넘었고, 손주까지 있다.) 아마 B는 이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걸 안다면 꽤 무안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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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0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힌 부분 펼치기는 왜 안보이는거에요? 야한거 나올지도 모른다고 잔뜩 기대했는데.

근데 뾰로롱~ 너무 웃겨요. ㅋㅋㅋㅋㅋ 그 다음이 생각나지 않아서 뾰로롱이라니 ㅎㅎㅎㅎㅎ
근데 아치 글씨, 내 마음에도 쏙 드는 글씨에요. 으음, 대체적으로 과장들은 아치를 좋아하는가보다. 아치가 좋은 사람인줄 알아보는 눈은 과장쯤 되야 생기는 건가봐요. 후훗

Arch 2011-04-06 17:40   좋아요 0 | URL
접힌 부분 다시 수정했어요. 그거 보면 지금 한 말 수정하고 싶을걸요~

뾰로롱은 남보원이란 프로에서 했던건데. 다락방은 TV를 잘 안 보니까 모르구나.

다락방 2011-04-06 17:41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웃겨. 아 진짜.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아 과장님 완전 웃긴데요. 음, 대체적으로 과장들은 웃긴가봐요. 하하. 풉-

조선인 2011-04-06 18:29   좋아요 0 | URL
아, 난 쪼잔한가봐요. 다락방님처럼 호탕하게 웃을 기분이 안 나. '빈 말'을 당당히 걸어놓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 못 하겠어요. 에잇.

Arch 2011-04-07 08:57   좋아요 0 | URL
다락방 난 좀 무안했어요. 칭찬 기대하면서 막 칭찬받을 짓도 하고 그랬거든요.

조선인님~ 전 과장님 심리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냥 누가 당신 자리와서 볼거라고 생각 못한거 같아요. 과장님 자리는 직원들 자리에서 좀 떨어져 있거든요!

pjy 2011-04-0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말은 진짜 접어놓던지요~ 뭡니까 이거 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전 아흔되시는 외할머니가 계시는데 딱 B 같습니다~ 제가 먹어도 나중에 엄마한테 이릅니다ㅋ

Arch 2011-04-07 08: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고자질하는 것도 문제지만 C가 사무실 사람이랑 먹으라고 한걸 굳이 자기거라고 우기는 B가 좀 문제죠. 그게 어떤 근성 같은건가봐요. 나이 든다고 바뀌지 않는.

nada 2011-04-0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완전 웃긴 반전이에요.
가만 보면 아치님 일상도 약간 시트콤 같아요.
근데 전 종이까지 붙여놓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과장님이 멋져 보이는데요.
(제가 그 과장님하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ㅎㅎ)

뾰로롱~ 진짜 귀여워요.ㅋㅋㅋ
써먹고 싶은데, 전 귀여운 척하면 영 어색해서.-_-

Arch 2011-04-07 09:03   좋아요 0 | URL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말 잘 실천하고 계시거든요. 제가 낚인걸 보면..^^
무안했던거지 기분 나쁘고 그런건 아니거든요. 전 별명짓고 캐릭터 잡는거 좋아해요. 그래서 시트콤처럼 써진 것 같아요.

저도요~ 제가 귀여운척 하면 a가 딱하게 쳐다봐요. 그럼 초등학생처럼 얘기해주죠.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할수록 느는거 같아요. 잘하는진 모르겠고.

에디 2011-04-07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빵 터지게 웃었어요 아치님. (아 어떡해...ㅋㅋㅋㅋ)

Arch 2011-04-07 09:04   좋아요 0 | URL
이 댓글 꼭 다락방 댓글 같아요. ^^

치니 2011-04-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귀여운 아치님, 인제 전보다 조금은 편안한 직장 생활로 보여요. 부러 그렇게 쓰시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보기 좋아요.
초등학생에겐 함부로 말했다가 마음에 큰 상처 받습니다, 조심하셔요. -_ㅠ 전 얼마 전에 유치원생인 제 조카에게 '못 생겨서 혼나야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린이들이여, 우리 어른들 좀 이쁘게 봐주세요 엉엉.

Arch 2011-04-08 10:37   좋아요 0 | URL
치니님~ 고마워요! 피다한 원주민들처럼 고맙다는 말 대신 고마운 행동을 하는게 더 나으니까 고맙다는 말을 안 하고 싶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조카가 무서운데요. 근데 전 치니님 말에 자꾸 웃음이 나요. 어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