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들렀다가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뮤지컬을 보러 전주에 갔다. 옥찌들은 박수를 몇번 치더니 심드렁해졌다. 내가 봐도 여러 목소리를 변조해서 내가 읽어주는 책이 훨씬 재미있겠다 싶었다. 이야기만 좀 더 첨가된, 다른 이야기들과 상상력보다는 그저 조금 긴 책을 읽는 느낌이었으니까. 아이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게 똥이나 방귀라고 그걸 소재로 쓰면 어떻게 하든 먹힐거라는 안일한 기획 자체가 별로였다. 물론 흥행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진 않다. 배우들의 역량에 그 정도 무대면 더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었을텐데......
뮤지컬을 보고 나와서 덕진공원에 갔다. 오오~ 이 좋은 냄새는 뭐지? 연꽃이다. 호수 가득 연꽃이 피어 있었다.
사진기를 놓고 온게 한이 됐다.
더운 날씨였지만 물을 보니까 신이 났다. 우선 간단하게 두유를 한잔씩 마시고선 공원 탐색을 시작했다.
이때까진 약간 심드렁해져선 몸이 배배 꼬였던 옥찌들.
옥찌들이랑 손잡고 다리를 건너 음악 분수도 구경하고 긴줄에 매달린 그네도 타봤다. 지희는 송이라는 언니를 만나서 잡기 놀이를 한다며 신이나 있었고, 민은 비둘기떼들을 보더니 신기한지 자꾸 쫓아다녔다. 애처럼.(이봐, 민은 애라고!)
요 아이예요.
한참동안 개미며 비둘기를 잡고 쫓고 같이 장난치던 민이 비둘기가 안 잡힌다며 내게 왔다. 나는 민에게 살짝 말해줬다.
- 민아, 오늘 집에 가서 비둘기국 끓여먹게 한마리는 잡아와야지.
-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응?
- (굳혀야겠다는 생각에) 민아, 그거 알아?
- 뭐?
- 누나는 5살 때 비둘기 두 마리를 잡아왔어.
- 누나 진짜야?
-(능청 옥찌) 그럼. 그래서 맛있게 먹었어.
- 살금살금 다가가서 두 손으로 와락 잡는거야. 알겠지?
- 그런데 얘네들이 자꾸 날아가.
- 그러니까 살금살금. 응?
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비둘기를 잡는다며 와하고선 양팔을 벌리며 뛰어다녔다. 그러더니 재미 없어졌는지 모래를 뿌리며, 발을 땅에 쿵쿵 찍어대며 비둘기를 쫓아냈다.
난 벤치에 앉아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02를 읽었다. '체력은 국력' 부분에서 진도가 느려졌지만 낯선 시선으로 보는 한국인, 한국의 모습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잡아낼 수 있었다. 전에 하얀 가면의 제국을 읽으면서는 내가 몰랐고, 관심조차 갖지 않은 다른 나라를 보는 눈을 갖을 수 있었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만의 시선이 유효한 대목들이 있음을 늘 느껴오고 있었다. 어느 대목에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박노자씨는 여남 문제에서 약간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란 느낌을 받은적도 있다. 고미숙씨에 의하면 그는 언어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좋아지는건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딱 그렇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새것 증후군이 아니라 그만큼 그의 공부가 발전하고, 그 자신이 성장하는 것에서 내가 자극을 받길 바라는 역시, 욕심에서다.
그의 책을 읽다보니 이건 내 욕망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부분들이 사실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길을 무비판적으로 습득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하게 음모 이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일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제대로 알고 싶다. 제대로 알아서 단정적이거나 선언적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내것인 말을 만들고 싶다란 (과도한) 의욕이 불끈, 한낮의 공원에서 생겼다.
울 애기들 배가 고픈지 자꾸 칭얼대서 집에 가려고 일어섰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예쁜 연꽃이 좋아 옥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이런, 옥찌는 사진을 이모보다 더 잘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