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재미있지도 않는 글을 몇편으로 나눠서 길이로 승부를 보려는 아치의 속셈을 미리 간파하신 분들께 미리 배꼽사과를. 이 말을 써놓고보니 문득 사과가 먹고 싶은건 절대로 내가 위가 크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은 새벽이고, 뭔가 싱싱해보이는 것들은 죄다 먹을 것으로 보일때니까. 정말이다! 이 사람, 속고만 살았나.
 
 '아치, 네 얘기 말고, 그래서 어떻게 놀고, 뭘 먹고, 어쨌어, 저쨌어' 그렇다. 모름지기 여행후기는 그래야하건만 나는 얄미운 멍멍이랑 할머니랑 풀벌레랑 보리빵 얘기를 하고 싶은데 어쩌겠어. 그래서 다시 또 말들이 풍선을 타고 훨훨 날아다니기 전에 사진으로 비끄러맨 얘기만 해보련다. 

 삼겹살로 근사한 저녁을 먹고-멜기님이 고기를 무척 제대로 구웠기 때문이다란 말을 해둔다. 멜기님을 가스렌지 앞으로 인도한 아치의 작은 립서비스?- 우린 승주님이 제안대로 한줄씩 시쓰기를 했다. 그 사이사이 모임 때보다 더욱 짖궂은 승주님의 말씀-정말 말씀이다. 나중에 승주 어록을 편찬할 예정이다-이 이어졌다. 술이 몇순배 돌고, 알딸딸한 느낌으로 가물가물 잠이 오는데 푸하님이 촛불을 켰다. 사람들 얼굴이 부드러웠다. 그 밤, 우린 멜기님의 말 못할 첫사랑 얘기를 들었고, 누가 코를 심하게 고는지를 두고 아웅다웅했다. 아득하게 멀어지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전날보다 덜 추웠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물이 안 내려가서 야외 셀프 일처리 얘기가 나왔다. 배변과 삽을 파는 순서를 놓고 A.B 방법이 나왔다. 어느 정도 깊이로 흙을 파야할지 어느쯤이 좋을지 의논을 했다. 더 많은 얘기들은 혹 식사 시간에 이 글을 볼지 모를 분들을 위해 스킵하겠다. 내가 전날 치룬 배변 방식이 어디에도 맞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다들 C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겠다며 농을 치는 모습은 어떻게하나, 사랑스럽다고 할 밖에.

 방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미잘이 기름기가 안 닦인다며 플라스틱컵을 쓰레기 태우는 곳에 넣다가 멜기님에게 적발되어 문초를 당하고, 이를 잽싸게 잡아챈 승주나무님이 '어줍미잘'이란 별명을 급조해내고, 나는 승냥이떼처럼 달려들어 자꾸 어줍미잘이라고 부르니 오호, 미잘 얼굴 빨개지는건 시간 문제더라. 남자들만 있어서 혼자 고생하는거 아냐란 생각이 없었던건 아니었지만 조신하게 걸레질을 하는 푸하님을 보고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었다. 승주나무님과 멜기님 표정과 포즈가 너무 귀여워서 미잘님의 카메라는 쉴 수가 없었다. 



 일찍 일어나 근처를 돌아본 멜기님의 제안으로 강가를 향해 고고씽! 아치와 푸하님은 뭔얘기를 하고 있었을까?
 


 멜기님이 마을 사람들이 타는건데 우리가 타도 되는지 계속 걱정했지만 우린 잽싸게 배에 타고선 제자리에 놓으면 된다고 막무가내로 우겼다. 노를 젓는다기보다는 굵은 줄을 오로지 손힘으로 밀고 당겨서 움직여야했던 배. 옷을 다 버리고 진흙이 튀었지만 유원지 오리배에 비할바가 못되는 경험이었다. 배를 타는 동안 다행히도 동네분들은 오지 않으셨다.

 고씨동굴까지 걸어서 가는 중에 과제 준비로 푸하님은 먼저 떠나셨다. 푸하님을 배웅해주고 고씨 동굴 유원지로 걸어들어오는데 까르륵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분수에서 물을 피해가며 가로지르기 놀이가 한창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분수를 가로질렀고, 막 소리를 냈고, 남들이 물에 흠뻑 젖을때면 무척 행복해했다. 분수경력이라도 있는걸까, 여러번 왔다갔다하는데도 옷이 잘 젖지 않던 승주나무님을 위해 난 특별히 물이 왕창 솟아오를 때 뛰라고 친절하게 코치를 해줬다.

 흠뻑 젖다. 초여름 햇살에 잘 마르도록.

 

 막걸리와 함께하는 도토리묵, 칡냉면, 칡칼국수. 환상이었다. 아치의 몹쓸 요리로 아침을 먹은 덕에 얼굴 곳곳에 허기라고 적혀있던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진정 행복했다. 게다가 낮술은 정말이지, 낮술을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 사람은 상을 줘야한다. 한참을 마셔도 낮이라니! 몇은 졸고 몇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고씨 동굴은 관람보다는 왔으니 가본다는식으로 돌아보았다. 별다른 재촉 없이, 알아서 움직여야하는 스케쥴도 없이 느릿느릿 걷고 얘기했다. 사람들은 평균 걸음보다도 한참 느린 아치를 부르고, 난 날 부르는 소리가 좋아서 괜히 발길을 늦춰보기도 했다. 쓰다보니 무척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날의 취기와 미끌거렸던 동굴, 그토록 남김없이 우릴 안아주던 하늘과 산과 강. 



 그렇게, 안녕 영월! 우리 다시 볼 수 있겠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치와 미잘은 승주님에게 연애학 강의를 듣고 간신히 학사 과정 2학년을 끝마쳤다. 미잘은 '지는'석사 과정이라고 우겼으나 아치가 볼 때는 둘 다 도찐개찐이었다. 피곤하다며 자려는 아치를 부득불 깨워선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에너지, 힘은 바로 그들이 갖고 있는 여행은 끝까지 재미있어야 한다는 무모한 열정이나 심심한걸 못참는 성정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자신들이 곁을 내준 나와 내가 곁을 내준 자신들 사이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은 욕심, 무리하지 않게 딱 좋을만큼 맞아떨어지는 맘의 거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참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다니는 여행이 앞으로 더 좋아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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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9-06-25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분명 미잘님의 첫 출현일 거 같아요.
그동안 신비주의를 고수해오던 분인데. 음... 이거 보시고 '허~걱~'하실지도.ㅎㅎ~

승주나무님이 분수대에서 뛰어가는 모습이 넘~ 인상적이에요.하하~

무해한모리군 2009-06-2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의 저 천진한 표정~

승주나무 2009-06-2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보이네요... 얼라들하고 놀 때가 제일 재미진 거 같아요 ㅋㅋㅋ재미지다 ㅎㅎ

푸하 2009-06-25 17:32   좋아요 0 | URL
저 사진을 메인으로 올리세요.^^;

Forgettable. 2009-06-25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발 나좀 데려가 달라고 졸랐어야 했다는..

Arch 2009-06-2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 승주나무님이 한 천진하세요. 그렇죠? 재미지죠!
뽀님, 다음엔 꼭 같이해요^^

순오기 2009-06-26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멜기님을 여기서 보네요~ 반가워라!
여행후기만 읽어도 재미있네요~~ 좋을 때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6-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건 몰라도 연애학에서는 제가 아치님보다 두 수는 위죠. 우리 인정할건 인정합시다.

승주나무 2009-06-29 20:3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연애학에 대해서 석사학위를 딴 어줍미잘 님과 학사 갓 졸업한 아치 님이 최소 한 수 정도 차이나는 것은 인정해야 할 듯합니다. 승주나무 연애 박사후 과정^^

Arch 2009-06-30 01:49   좋아요 0 | URL
치이~ 어줍미잘인데도?

웽스북스 2009-07-0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멜기님 완전 쉬크해지셨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