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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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불로초를 찾기 위해 수하들을 전 세계로 보낸 진시황의 이야기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생을 원하는 만큼, 불로장생은 비단 진시황의 꿈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30살이었던 선사시대부터 그 바람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류의 그 오랜 바람대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최근에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세계보건통계 2010'에 따르면, 2008년 출생아를 기준으로 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0세로, 8년 전인 지난 2000년보다 4살 더 늘어났다고 한다. 바야흐로 평균수명 80세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인류의 소원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환갑이 되면 오래 살았음을 축하했지만 이제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져 가고 있다. 이제 노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길어진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길어진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노년을 성공적이고 행복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조지 베일런트는 42년 동안 사람들의 삶을 연구한다. 1920년대에 태어나 사회적 혜택을 받으며 자란 268명의 하버드대학교 졸업생들(그랜트 집단), 1930년대에 출생한 이들 중 사회적 혜택을 누리지 못한 이너시티 고등학교 중퇴자 456명(이너시티 집단), 1910년대에 태어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중산층 여성들 90명(터먼 여성 집단)의 삶을 조사한 '성인발달연구'가 그것이다. 이 하버드대학교의 성인발달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성인 발달에 대한 연구라고 한다. 따라서 성인발달연구는 그 자체로도 크기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공적인 노화란 어떤 것인지, 그것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배가 된다. 이런 의미 있는 연구를 토대로 한 결과물이 바로 다름 아닌 이 책 <행복의 조건>이다.  

 과연 성공적으로 노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나이가 들어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의 초등학교 때 일기장엔 엄마, 아빠의 흰머리가 슬프다고 적혀있다. 나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크는 만큼 엄마, 아빠가 늙어야 한다면 나는 어른이 빨리 되지 않아도 좋다고, 그렇게 적혀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 아빠가 나이 드는 것이 슬펐나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나는 언젠가 엄마께 나이 드는 것이 슬프지 않느냐고 물었었다. 엄마는 나이를 먹는 것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라고 하셨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서글픈 일만은 아니겠구나'하고 생각한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어쩌면' 이라는 나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 집단, 이너시티 집단, 터먼여성 집단, 이 세 집단의 삶을 소개함으로써 노화가 단순한 쇠퇴의 과정이 아니라 한층 더 활기를 더해가는 삶의 과정임을 알게 해주었다. 물론 연구대상자 모두가 멋지고 행복한 노년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어떤 이는 불행하고 쓸쓸한 노년을 맞았다. 하지만 멋지고 행복한 노년을 맞이한 대상자들을 통해 삶의 훌륭한 가치를 찾아내고, 불행하고 쓸쓸한 노년을 맞은 대상자들을 통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실패한 자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이 책에서 베일런트가 성공적인 노년을 보낸 대상자만을 소개하지 않고, 불행한 노년에 이른 대상자들까지도 소개한 것은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행복한 노년을 맞이한 연구대상자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앤서니 피렐리'와 '프레드 칩'이었다. 앤서니 피렐리의 유년 시절은 불행 그 자체였다. 대개의 이너시티 집단이 그러하듯 피렐리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피렐리의 형제들은 단단하게 결속하여 서로를 돌보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피렐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피렐리를 애정을 가지고 돌봐준 누이 애나, 공부를 더할 수 있게 용기를 준 형 빈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덕분에 피렐리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알았던 피렐리는 내가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었던 그 말을 똑같이 해주었다. 늙는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인생은 수많은 장들로 채워진 책 한 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생의 한 장이 끝나면 반드시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하며, 늙는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했다.(p.44) 프레드 칩은 노년에 '항해 여행'을 취미로 삼으며 남은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이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늙는다는 것이 무력해지는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다. 아마도 한 시인이 노래한대로 그에게 아직 가장 넓은 바다는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멋지고 행복한 노년에 이른 대상자들에게 주어진 조건은 각각 달랐다. 하지만 '행복한 노년'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다다르는 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이점에 대해서 베일런트는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을 일곱 가지 주요한 행복의 조건으로 꼽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형태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통한 친밀감 형성, 사회적 유대관계를 통한 정서적 안정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베일런트도 이 연구를 통해 절실하게 느끼는 바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말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이다.(p.268) 두 번째로는 '자기관리'를 들 수 있다. 역시 그 형태는 운동, 금연, 금주, 끊임없이 배우기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같다. 반대로 불행하고 쓸쓸한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앞서 말한 것들이 부족했다.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요소로 '관계의 부재'와 '자기 관리의 소홀'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몰랐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신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성공적인 노화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긍정적인 요소는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요소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서라도 개선해 나가야겠다. 베일런트는 2008년 3월에 한 인터뷰에서 "성인발달연구 대상자들에게 배운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하였다. 하지만 이는 아직 나에게 많이 부족한 부분이다.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요소들 중 나에게 부족한 면을 찾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나이 든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베일런트도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은 뜻밖의 행운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p.297) 또한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가? 그렇지 못한가? 결국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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