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제일 편한 거야!" 학교 다닐 적 어른들이 늘 하시던 이 말씀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야 힘들면 좀 쉬었다 하고, 아프면 약 먹고 좀 괜찮아지면 또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지만, 운동은 부상당하면 자칫 선수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다칠지도 모르지만, 꿈이 좌절 될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앞을 향해 나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많은 운명들 속에는 몸을 써야하는 운동선수의 운명도 있을 것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처럼, 이런 별도 있고, 저런 별도 있는 것이 여기 이 세상에서도 적용되는 룰이기에.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경기 종목 중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종목이야!" "왜 그런 무거운 걸 드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그 종목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대개의 운동 종목들이 그렇듯이 역도 역시 메달 색깔에 따라 대우도 달리 받으며, 또 올림픽 때 잠깐 말고는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88올림픽 때 부상으로 동메달에 그친 역도 선수 이지봉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상은 그를 쉽게 잊었고,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리스트인 그에게는 노력의 대가라는 값진 선물도 없었다. 남은 것은 운동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것과 부상으로 생긴 영광 아닌 흉터자국뿐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전전하다 시골의 한 여중학교의 역도 선생님으로 가서 가난과 놀림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그렇지만 꿈만은 충만한 시골소녀들과 만나게 된다. 역도라는 것을 배워봤자 좋을 것이 없다며, 부상당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며, 지금 내 모습이 좋아 보이냐고 하며 다른 것을 배우라고 하는 그에게 이것은 자신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며, 역도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해본 적이 없다고 가르쳐달라고 시골소녀들은 다부지게 말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영혼을 물들일 이지봉 선생님과 시골 소녀들의 잊지 못할 순간은 시작된다. 각본도 대본도 없는 그래서 더욱 재밌고 극적인 그녀들의 스포츠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선수 입문 초기시절부터 제법 선수 티가 나게 되기까지 6명의 역도부 소녀들은 서러운 일도 함께하고, 무시당하는 것도 함께 당하고, 상 받는 것도 함께 받으면서 가족 못지않은 따스함을 나눈다. 그 중 누군가 울면 달래기보단 더 서럽게 같이 울었고, 또 누군가 아파하면 그보다 더 아파하며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다부진 근성을 가지고 허리통증이 와 고통스러워도 이지봉 선생님의 위로 몇 마디에 다시 용기를 내는 영자, 자신의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것을 번쩍 들면서도 자신의 사랑 앞에선 수줍어 머리를 귀 뒤로 슬며시 넘기며 뺨을 붉히는 소녀, 단지 역도복이 예뻐 보여 역도부에 들어와 메달은 하나도 못 땄지만 다른 역도부 소녀들에게 멘탈트레이너가 되어준 소녀, 효심 지극한 소녀, 그런 소녀들을 끝까지 믿고 응원해준 킹콩 이지봉 선생님... 그녀들과 이지봉 선생님이 만들어 가는 드라마에는 누구보다 유쾌한 코미디, 로맨스,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 극적인 일 이 모든 것이 녹아있다.
심판 판정 시비가 적어 자신의 체력과 힘만으로 결과를 내는 정직한 스포츠를 그녀들은 우직하게 또한 가슴 찡하게 해 나간다. 그녀들이 온 힘을 다해 자신 앞에 주어진 역기를 들어 올리고, 성공 했다는 부저 소리가 울릴 땐 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뭉클했다. 살아가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역기를 들어 올렸을까. 이 정도쯤이야 문제도 아니지, 하며 번쩍 들어 올린 역기도 있었을 것이고,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무게의 역기를 들어 올리려다가 다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가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금메달 땄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금메달 인 것도 아니고 동메달 땄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까지 동메달이 아니라는 이지봉 선생님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어떤 일에 최고의 성적을 내지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에게 금메달을 수여해도 될 것이다. 매 순간 노력하고 도전하려는 자신만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킹콩 보다 더한 것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결말이 뻔해 보이는 스포츠를 다룬 영화인데도 무한한 감동을 준 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부터 쏟아 붓는 비속에도 오늘 이 영화를 함께 보러 간 친구의 한마디는 "영화 잘 골랐네.^ㅡ^" 였다. 배꼽 빠지게 웃다가 눈물범벅이 되어 영화관을 나왔다. 내가 들을 킹콩의 무게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가벼울 것임을 확신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