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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 Memoirs of a Geish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요즘 날씨 태세를 보아하니 드디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려나 보다. 이런 날에는 시원한 물로 샤워한 다음, 선풍기 틀어 놓고 cf 속 한가인처럼 아아~하는 소리도 내보고, 수박 한 덩어리 예쁘게 잘라다가(대충 잘라서 수저 하나 들고 퍼 먹는 게 원래의 나지만ㅋ), 소파에 대자로 드리 누워 책을 보든지, TV를 보든지 하면 아주 딱이다. 나는 나의 이 생각에 충실하기 위해 소파에 대자로 누워 TV를 틀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신문을 훑어보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오늘 오후 3시에 OCN에서 게이샤의 추억을 방송해 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선풍기도 틀어놓고 수박도 잘라놓고 만발(?)의 준비를 하곤 소파에 앉아 게이샤들을 만나러 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들어 봤을 테지만, 게이샤는 일본의 기녀이다. 우리나라의 기생도 그렇지만 게이샤 역시 화려한 꽃을 생각나게 한다. 여자들은 청각적으로 약하고, 남자들은 시각적으로 약하다고 하는 말이 굳이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기녀들은 누구보다 예뻐야 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쁘지 않은 꽃을 탐하는 나비는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인 사유리 역엔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인 장쯔이가, 오키야 최고의 게시야 역인 하츠모모 역엔 공리가 캐스팅 되었다. 이 두 여배우의 아우라 대결이 이 영화의 영상미를 더해주었다고 하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더없는 볼거리였다. 거기다 화려한 옷과 아름다운 색감, 눈부신 배경들까지 어우러져 영화의 영상미를 한껏 뽐냈다.
줄거리를 살짝 얘기하자면(스포일러가 아닌 선까지^^) 집이 가난하여 어느 곳으로 팔려가게 된 주인공 치요(사유리)는 팔려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오키야 최고의 게이샤인 하츠모모의 괴롭힘과, 가족인 언니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들을 겪으며 성장해 간다. 아직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어쩌면 너무나 벅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드라마 속 많은 여주인공들이 그렇듯, 아니 예전부터 읽히던 영웅담에서의 주인공 또한 그렇듯, 은인을 만나게 된다. 노예나 다름없던 신분이 된 그녀에게 “슬픈 얼굴을 하기엔 날씨가 너무 좋지 않니?” 하며 친절을 베푼 회장에게 그녀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때부터 그녀는 줄곧 회장을 만났던 그 날을 기억하며 멋진 게이샤가 되어 그의 앞에 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하염없는 그리움을 남겨,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을 낙인처럼 자리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에게 회장은 운명이 되어, 훗날 그녀가 하는 말처럼, 그를 처음 본 그 후로 자신이 걷는 한걸음 한걸음은 그에게 다가가기 위한 길이 된 것이다. 게이샤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하게 된 그녀의 그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은 어쩌면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 되었다면, 또한 그 사랑이, 선택이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살아갈 목표를 준 것이라면, 그녀의 추억은 슬프지 만은 않은 것이라 생각된다. 한 여자로 태어나 한 남자를 후회 없이 사랑한 것이, 그녀가 추억하는 게이샤의 추억이라면, 그것은 슬프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괜히 슬픈 운명이지만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한 주인공이 부러워진다.ㅠ) 비록 때가 되면 흩날려버리는 벚꽃처럼 아스라 질 꿈이라지만, 후회 없이 많은 향기를 품고 나서 흩날리는 벚꽃은, 흩날린 그때조차 아름답지 않은가. 게이샤는 남자에게 아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의 결실이라 하는 혼인까지는 못하겠지만, 그녀의 사랑이 실패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특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이샤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의 삶의 모습이 그려진 영화 같았다. 그녀도 그냥 여자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던 것일까. 아름답지만 슬플 수밖에 없는 그러나 온전히 슬프지만은 않은 게이샤 또한 평범한 여자의 삶의 모습을 온전히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여자로 태어나 겪어야 하는 아픔을 좀 더 아프게 겪는 것뿐이라고, 누구나 겪는 홍역을 좀 더 심하게 치른 것뿐이라고 그렇게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길이라면 말이다. 사유리 파이팅! 어느멋진날도 파이팅이다^^
아, 어느멋진날(그러니까, 본인 말이다ㅋ)의 어느 더운 여름날은 이렇게 감성에 젖어, 벚꽃타령을 하며, 사랑 타령을 하며 보내고 있다. 이 또한 슬프지 만은 않은 일이라 위로해 줄 누군가가 있길 바라며, 게이샤의 추억 리뷰를 마쳐볼까 한다.(주인공의 사랑의 결말은 강력한 스포일러라 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