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1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 / 강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서울이 어느 날 소설이 되었다니, 이 책 제목을 보고 문득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서울,1964 겨울이 떠올랐다. [서울,1964 겨울]에서의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나. 고독한 세 남자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의 자살. 현실에서 분리된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들의 소외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개인주의로 변해가는 서울의 모습을 따스함과는 거리가 먼 지독한 고독감과 죽음의 이미지로 그려내었다. 
 그 후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에서는 서울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였다. 출생지도 출생년도도 각기 다른 아홉 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울의 모습이 어떨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들이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끌어낼 지 궁금하다 하였으나, 사실 난 서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전라북도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나에게 서울은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경복궁과, 고등학교 때 수능 마치고 친구들하고 간 롯데월드, 그리고 대학교를 서울로 간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서울에 가본 적이 몇 번 없었지만 갈 때마다 내가 보인 반응은 어느 정도 비슷하였다. 어디서 다 튀어나온 건지 끝도 없이 펼쳐진 사람들의 향연에 입을 다물지 못한 그 반응이었다. 외계인이 우주에서 서울의 사람 떼를 본다면 흡사 개미떼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숫자에 놀란 것과 동시에 내가 느낀 감정은 어느 정도의 소외감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많은 인파속에서 따스한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경복궁에서, 롯데월드에서, 친구와 함께 간 클림트 전시회장에서 내가 만든 인연은 셀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나는 그 중 한사람조차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물론 그날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 또한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하고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것 같다. 갖은 촌티를 다 내며 두리번두리번 사람구경도 하고 으리으리한 건물구경도 하는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은 땅을 보고 걷거나 그것은 아니더라도 어디에도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서울로 대학을 간 후 나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며 이 곳으로 초대해 준 친구에게 왜 사람들이 땅만 보고 걷지? 하였더니 친구는 널리고 깔린 게 사람이라 사람 보는 것이 자신도 징그러워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천만 명의 인구를 품고 있는 서울이니 그 말이 일리가 있겠구나 싶어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울의 천만 명의 사람들이 느끼는 서울의 모습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개미떼 같은 그 어마어마한 인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고독함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밀물이 쏴~빠져나가고 난 후의 바다처럼, 텅텅 빈 마음이 파도가 되어 무섭게 삼켰을 것이다.

 김승옥 작가의 서울,1964 겨울에서 그려진 서울의 모습과, 내가 어쩌다 한 번씩 본 서울의 얼굴과 이 소설에서의 서울의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북촌> 에서 그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황망히 사라지는 어떤 것들에서는 휘발성과 소비성이 강한 서울의 단면을,<빈 찻잔 놓기>에서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겉도는 블랙조의 모습으로,<죽음의 도로>에서는 서울만 아니면 괜찮다는 주인공에게서 죽음의 이미지를 <벌레들>에서는 좌절감과 공포감을 <크림색 소파의 방>에서는 서울로의 진입을 고통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서울에서의 생활이 순조롭거나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었다. 전반적으로 소설 속 주인공 주변 인물들은 J, K, Y, H 등 이니셜로 등장한다. 롯데월드에서 몇 시간동안이나 내 앞에서 놀이기구 탈 순서를 기다린 사람의 이름도, 지하철에서 한참이나 내 옆에 앉은 사람도, 심지어 옆집에 사는 사람의 이름도 모르는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대목이어서 가슴 한편이 씁쓸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심각한 개인주의에 파묻힌 서울이지만, 제가 고향인 사람들조차 푸근하고 넉넉하게 받아주고 감싸주지 못하는 서울이지만,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수선하다 느끼는 서울이지만, 절대 떠날 수는 없는 결국은 돌아오게 되는 곳으로 그려내어 준다. 매일 싸우고 다퉈도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오래된 연인과도 같은 모습으로 애증을 함께 쏟아낸다.<북촌>에서는 많은 외로움을 겪었지만 기다림을 아는 그로부터 <죽음의 도로>에서는 자살시도를 하지만 결국은 아무 일 없던 듯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으로부터,<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에서는 누이의 골절된 어깨로 내려앉은 작은 새에게서 아직은 꺼지지 않은 따스한 작은 불씨를 발견한다. 서울은 그렇게 또 다시 소설이 되었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떠나고 싶어도 떠나면 그리워지는, 추억을 새긴 나무 막대처럼 아련하지만 생생한 서울은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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