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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전집 - 증보판
백석 지음, 김재용 엮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백석이란 시인의 첫느낌은 낯설음이었다. 대학을 오기전까지는 알지도 못하는 시인이었고, 얼마전 우연히 그의 시 중 하나인 여승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시집을 펼치고 시를 읽으려는 순간 느낀 것 또한 이런 낯설음이었다. 시집의 제일 앞머리에 있는 시인 “가즈랑집”에서부터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 때문에 기본적인 독해과정에서조차 애를 먹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세시 풍속들과 전통적인 삶의 모습들은 시의 이해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일단 백석이란 시인에 대한 정보와 그의 시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해설에 먼저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시를 읽을 때 내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 바로 이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인 백석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아무래도 그가 재북 작가라는 점이었다. 해방 이후 북쪽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다는 점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 게다가 내가 멋모르고 백석이라는 이름만 보고 구입한 “백석전집”이란 책은 말 그대로 전집. 그의 시 뿐만 아니라 수필, 소설, 동화시, 평문이나 정론 등 그의 모든 분야의 글이 실려있는 것이었다. 물론 책의 뒷 부분의 평문이나 정론등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대략적으로나마 그의 사상과 작품의 매력을 느껴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남한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억압적 사회체제를 구축한 북한에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방법이었던 시 쓰기를 포기당하고 절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상황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북한 뿐만 아니라 남한 또한 그에게는 대안이 될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는 그의 사상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방언과 전통적인 세시풍속 등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이러한 백석 시의 특징 때문에 그의 시에 대해 향토주의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고 한다.
그가 시를 쓰던 그 시대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풍습들과 언어들을 왜 그는 힘들게 시로 형상화시킨 것일까?
우선은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 민족적인 것을 살리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발생하는 고독과 외로움, 공동체의 파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백석은 전근대적 삶의 조건에서 발견하였으며, 당연하게 그의 시의 뿌리도 그 시대를 닮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삼천포”라는 시의 마지막 연인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란 부분은 이러한 시인의 지향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부분인거 같다. 물질적, 외양적으로 부유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실제로는 꽉차고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로 따사로운 가난이라고 했을 것이다.
백석의 시가 보여주는 현실세계의 모습과 그가 꿈 꾼 세상은, 그저 막연하게 전원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것이 아닌, 그가 살던 시대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확실한 지향점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힘을 가질 수 있으며,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시인의 시 한편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부분으로, 시집 한권을 전체적으로 읽는 작업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는 줄거움일 것이다.)
내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이 하루에서 몇 천명이 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끼고 외로워한다. 그러한 근대인의 소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찾으려고 했던 백석의 시는 오늘날에도 많은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바랐던 전근대적 삶의 조걱에 기반한 민중적 공동체가 지금의 현실사회에서 구체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꿈꾸었던 세상에 대한 기본 생각은 충분히 따뜻하고 언제나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백석의 시는 나에게 이제 낯설음의 대상에서 그리워할 수 있는 하나의 세상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