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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무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61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9월
평점 :
품절
정현종의 이 시집의 주요 테마는 생명과 환경이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는 사람>을 읽고 감동을 받아 쓴 '한 하느님', 에밀리아나 헉슬레이라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구름의 씨앗', 시집의 제목과도 같은 나무를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이라고 비유하고 있는 '세상의 나무들', '맑은 물을 얻지 못하면 산다고 할 수 없다'란 소로우의 문장 인용으로 시작하는 '맑은 물' 등 시인은 생명의 숨결과 환경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한편 시를 읽으면서 낯설음을 많이 느끼기도 했다. 이런 낯설음의 이유중 하나는 소재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구름의 씨앗'에서는 에밀리아나 헉슬레이라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등장하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에서는 칼슘과 철분이 전설의 대상이 된다.
시집에서 주의깊게 읽었던 시들은, 페루에 관해 쓴 시들이었다. 마침 신경숙의 <오래전 집을 떠날 때>를 읽고 있던 터이라, 같은 소재를 다룬 시들에 먼저 관심이 갔던 것이다. 마추피추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이미 사라진 한 문명의 흔적들만 남아 있는 그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글을 읽어도 쉽게 상상이 안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뿐.. 그렇게 멀다는데 과연 가볼 수 있을까?
'쿠스코의 달'이란 시에서 보여준 보름달의 이미지는 한동안 마추피추의 이미지를 대신할 듯 하다. 시집을 읽고 내린 결론이 '내 인생계획에 '페루여행'을 추가시켜야 겠군..' 이라면 좀 웃긴 걸까. 웃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집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 마추피추에서는 거대한 달이 아래서 떠오른다는 것이었으니까. 페루에 갈때는 꼭 보름을 껴서 가야겠다.
그리고 사실 정리되지 못한 생각의 고리가 있긴 한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인간의 모든 능력이나 특성들이 이미 유전자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일 뿐이므로, 형이상학적인 그 어떤 것들은 이제 폐기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와는 다르지만, 장자나 노자 등은 모든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고 무위의 도를 이야기한다. 현대사회처럼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성이라 불리우던 것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보면, 일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수용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정현종 시인처럼 생명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들의 목소리에서도 이런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미 세상은 이 모양을 돌아가고 있는데, '다 헛된 짓이다.'란 말이나 '개인의 마음이 문제이다. 헛된 욕망을 버려라' 라고 한들 세상은 바뀌지 않고 더욱 나빠지는 것만 같은데…..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란 것은 없는 것 같고,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문제의 해답은 알지를 못하겠다. 내 삶의 노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헷갈린다.
맑은 물, 공기, 자연과 소통하면서,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이 생각처럼 잘 돌아가는 세상은 역시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어차피 이 세계를 이루는 무수한 구성 인자들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또는 불균형을 이루면서 '완벽하지는' 않게 타협하면서 세상은 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되도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인가? 아직은 그 답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가장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고 또 직접 경험하면서 이런 고민들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나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