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집으로 가려고 뱅기표를 검색했더니 표가 없을 뿐더러 한 두 장 있는 것도 무지 비쌌다. 할 수 없이 며칠 더 환자 행세 여행자 모드로 지내기로 했다. 맘 같아선 계속 누워 있고 싶은데, 오늘 급히 거처를 구한 곳은 6인실 게스트하우스. 청소해야 해서 나가 주어야 했다. 근처에 서점에나 가봐야 겠다하고 검색을 하다 이 곳에 왔다. 제주시 한라도서관. 무려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5번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타고 왔다. 기본 요금.. 오는 길에 개민들레가 길가에 완전 폭탄 처럼 피어 있어 좋아 죽는 줄. 아저씨 여기 좀 세워 주세요. 할 뻔 했다.
아 한라도서관은 견 멋있다. 아트센트와 이웃해 있는데, 바로 옆에 송림 우거진 사이에 운동기구들도 좍 놓여 있고, 조용하기가 이루 말 할 데가 없다. 한 눈에 봐도 뭔가 잘 돌아가는 공공기관 느낌이 팍팍 난다. 일반열람실이 지하 1층이라 의외다 싶었는데, 내려와 보니 밖이 보이는 지하1층이다. 완전 쾌적..신간 코너에 책도 견 많다. ㅠㅠ
아침에 야나님 페이퍼에 필 받아서 <책을 읽을 자유>나 읽을까 하고 찾았더니 대출중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오늘 바람이 많이 분다)도 한 줄 인용할까 싶어 찾았더니 대출중이다.. 오..나름(읭?) 인기남들 ㅎㅎ. 고백하고 싶다. 마구..ㅍㅎㅎㅎ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 된다>를 뽑아 들고 오다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서 눈에 띄는 책들을 뽑아 왔다. 읽고 재밌었거나 읽어 봐야 겠다고 생각한 책들이다.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 된다>는 로쟈의 책읽기 2010~2012의 부제가 붙었다.
문제는 문해력이 곧 '독서력'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능력은 글자를 읽거나 글을 읽는 능력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능력이다. 그리고 이 독서력은 자연스레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권씩 2년 정도의 단기간에 꾸준히 읽으면 된다. 그렇게 '1만 페이지 독서'나 '150권 독서'를 통해서 독서력이 길러진다. 어지간한 책을 읽고 소화 할 수 있는 힘이 독서력이다. 만약 어지간한 책을 읽어내는 게 힘겹다면 독서력이 아직 부족한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글을 읽는 단계에서 책을 읽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단련된 뇌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단련된 뇌 근육은 독서의 지평 뿐 아니라 세계의 질감 또한 변화시킨다. 이 변화는 개인적 차원에서 한정되지 않는다. 문맹을 벗어난 사회가 문해력을 갖춘 사회라면 진정한 문명사회는 독서력을 갖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75쪽
짧은 글들이 다닥다닥 무지 두꺼운 두께를 형성하고 있다. 현기증 난다. 이런 책은 사실 멀리 할 수록 좋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차례만 읽어도 좋아 죽겠는 걸.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독서력을 갖춘 사회, 고전 읽기의 즐거움, 인문학의 미래, 강신주와 적정인문학, 철학자의 서재, 역사를 읽다, 삶의 의미라는 물음, 작가는 어떻게 죽는가. 걸작의 뒷모습. 정의란 무엇인가. 자유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울사회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정치의 몰락과 닥치고 정치.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 받는가. 발문까지 506쪽이다. 꽂아 놓고 바라보는 즐거움과 책 읽기가 지겨워 질 때 자극 받기 좋겠다. 이 책 속의 다종 다양히 언급 되는 책들에 대해서는 난 모르겠다. 눈 감고 싶다. 그가 좀 더 긴 글들로 책을 내는 날을 기대해본다.
<아주 사적인 독서>는 알라딘의 프레이야님과 오프에서 잠깐 만났을 때 정말 좋았다고 서로 얘기 나눈 책이다.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마담보바리>,<주홍글자>,<채털리 부인의 연인>,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손님>에 대한 저자만의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서야 내가 고전을 읽지 않았구나 라고 깨우쳤다. 중학교 때 읽은 세계문학전집이 나의 고전 읽기를 전부였다. 이게 무슨 횡재인지, 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재발견했으니.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마태우스님의 <집 나간 책>은 이제서야 손에 들었다. 며칠 전 세실님의 리뷰를 읽고( 이 책이 아니었나? 음....) 읽어 봐야 겠다 하던 참이다. 나는 먼저 익숙한 제목 <유령 퇴장> 부분을 읽어 보았다. 음..절대 로쟈님이라면, 정희진님이라면, 정여울님이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단발머리님과 또 다시 <유령퇴장>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마태우스님의 관점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 나누어 봐야겠다.특별한 관점이라기 보다 특별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지금 읽고 있는 <면도날>을 펼쳐 보았다. 이런 글귀가 마음을 때린다.
'10년째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책에서 인생의 해답을 얻은 남자보다 훨씬 좋은 남편이다' 302
그는 비슷한 컨셉의 책을 쓴 저자들의 책을 애정을 담아 다루었다.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이현우 <아주 사적인 독서>, 정혜윤 <그의 기쁨과 슬픔>, 조만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을 예정이다. 일본 소설 읽기는 좀 힘을 많이 시루어야 하는데 이런 리뷰를 에피타이저겸 읽는다면 책이 좀 선뜻 읽어질 것 같다. 학자나 비평가의 글보다 그래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기생충학자의 글이 그래서 반갑다. <정희진처럼 읽기>의 제목은 '만나기 힘든 스승'이다. 이 제목만으로도 그 책이 읽고 싶어 진다.
정용준이라는 이름은 야나님 서재에서 처음 보았다. 나만 모르는 꽤 잘나가는 한국 작가인 듯 했는데, 그의 북토크에 참석한 지인이 말하길 그 소설가는 정말 사람이 너무너무 좋다는 것이다. 좋다라는 의미는 개인적이고 특히 사람에 관해서는 취향적 단어라, 그녀가 말하는 너무 너무 좋다라는 말을 덜컥 이렇게 이해해 버렸다. 술을 잘 마시고 좋아하는 남자. 암튼 <우리는 혈육이 아니야>는 474번, 우리는 혈육이 아니야, 미드윈터-오늘 죽는 사람처럼, 개들, 이국의 소년, 안부, 내려, 새들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을 읽었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짧은 호흡으로 길고 복잡한 인생사를 담았다. 그리고 알았다. '아니야'가 아니라 '아니냐'라는 것을...
그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모르는 번호였고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 이름이 내가 맞는지 묻고 있었다. 음성은 작고 탁했고 말끝은 흐렸다 나는 그 이름이 내가 맞다고 대답한 끝에 그런데 누구시죠, 라고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누구시죠, 라고 물어보니 그는 더듬거리며 그러니까, 그러니까, 라고만 했다. 수상하고 이상했으나 끊지 않고 정적을 유지했다. 잠시 뒤 그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 낯선 여자의 이름을 말했다. 조금 긴 정적이 흘렀다. 회전하는 나무팽이처럼 어떤 기억이 같은 자리를 돌며 조금씩 깊어졌다. 여자의 이름이 기억났고 통화하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됐다. 욕조에 담긴 물이 바닥의 구멍으로 빠져나가 안이 텅 비는 것처럼 머릿 속이 그러했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서 땀이 났고 귀가 뜨거워졌다. 41
그리고, <버텨요, 청춘>이 있었다.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최전호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여행작가이다. 나는 남자 청춘들이 쓴 이런 글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여자라는 것이 그렇게 억울하지도 않았는데, 왜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걸까. 지금 나는 30분마다 일어나서 허리를 펴서 두드리며, 당당히 노인석에 앉아 있다. 나도 나름 청춘을 버티고 있는 셈. (노인석이 꽤 여러 테이블인데 노인들이 없다. 나는 도서관 노인석을 채우는 노인이 되고 싶다)
오늘은 2013년 1월 4일이니다. 캔디에 온 지 나흘째고 하루키가 쓴 네권짜리 소설 <태엽 감는 새>를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방금 전 숙소 아주머니가 내 방을 치워주고 갔습니다. 그러니 이제 한동안 내 방에 사람이올 일은 없을 겁니다. 난 이제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습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머리 위에 돌아가는 선풍기를 바라봅니다. 규칙적으로 쉴새없이 바람을 내뿜고 있는 선풍기는 최선으로 나를 대해줍니다. 230쪽
여행은 나의 안간힘이다_ 프롤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