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안경을 여러 번 봤다. 보다 자다 보다 자다 한 것이 하도 여러 번이라 몇 번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특출난 스토리도 뛰어난 풍광도 없는 평이한 영화였다. 주인공들이 모여 먹는 장면들이 좋아서 여러 번 봤다. 그래 이즈음에서 솔직히 말한다. 뮤지션 장기하의 추천영화여서 봤다. 그런데 내 취향이더라. <안경> 외에도 <카모메 식당>이나 <해피해피 브레드>, <하와이안 레시피>도 여러 번 봤다. 세 번 이상. 그렇게 보게 되는 이유는 당연히 볼 때 마다 재미있어서다. <리틀 포레스트>도.

 

<작은 것들의 신>을 다 읽었다. 확 읽어지는 소설은 아니었다. 시점도 왔다갔다 하고 자잘한 묘사들이 주옥 같아서 한 번에 확 읽는 것은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단어 하나 하나를 시어처럼 뚝 뚝 끊어 놓을 때가 많은데, 그 여운이 깊었다. 헤아리다 보면 마음이 아팠다. 누구 말이지? 누구 마음이지?하면서 자꾸 돌아가 읽게 되었다. 다 읽었다. 읽었긴 한데 안 읽은 것 같아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첫 부분을 읽는데, 역시나 처음 읽는 것 같고 이제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이렇게나.

 

아예메넴의 5월은 덥고 음울한 달이다. 낮은 길고 후텁지근하다. 강물은 낮아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고요히 서 있는 초록 나무에서 검은 까마귀들이 샛노란 망고를 먹어댄다. 붉은 바나나가 익어간다. 잭프루트가 여물어 입을 벌린다. 과일향이 진동하는 공기 중을 방종한 청파리들이 공허하게 윙윙댄다. 그러다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져서는 햇볕 속에서 당황한 채 죽어간다.

밤은 맑지만 나태와 음울한 기대가 배어 있다. 11쪽

 

새벽 4,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시에 태어난 아이가 4시에 세상을 떠났다. 바람이 시간을 아는 걸까? 창문이 흔들리고 개가 짖는다. 대문을 나서면 덩치 큰 검정개 한 마리가 노랗게 쳐다 보고 있다. 어느 집 개는 짖고 어느 집 개는 짖지 않는다.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인데 저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갯무라는 말이 예쁘다. 갯무 꽃의 색은 더 예쁘다. 피어 흐드러지고 마지막이다 싶게 남은 유채꽃의 색깔은 덜 노랗다. 전성기가 아니니 꽃이 빽빽이 피어 있을리도 만무다. 그렇게 성기게 유채꽃이 남았고, 흰색과 보라색이 섞인 듯한 갯무 꽃이 그 옆에서 적당히 흔들리며 피었다. 길고 가늘게 피느라 바람을 피해간다. 집을 들었다 놓나 싶은 거센 바람이 불고 난 아침, 대문 밖 공터의 유채꽃과 갯무꽃이 걱정이 되었다. 들판에서 그 바람을 다 맞았거니 하니 당연히 다 쓰러졌겠거니 한다. 아침에 슬리퍼를 꿰면서 바라 본 성긴 대문살 너머 꽃들이 흔들리고 있다. 눕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바람은 웅웅 울고, 컹컹 짖는 개 왈왈 짖는 개가 합창을 한다.

 

<작은 것들의 신>은 여러 번 읽게 될 것 같다. 일본 영화들을 여러 번 보았던 이유와는 또 다른 이유와 느낌으로. 다시 읽기하고 제대로 된 리뷰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소설이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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