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면 동쪽 끝 바닷가에 자리 잡은 북촌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자존심이 강한 마을이었다. 해방 후에는 항일독립운동가 출신들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와 중심으로 주민들이 똘똘 뭉쳐 있었다. 경찰은 1947년 3.1사건 직후의 대검속 기간에 조천 민청의장단의 일원이었던 북촌 출신 김완배를 체포한 바 있었다. 경찰은 김의 몸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촌 청년 33명의 명단이 적혀 있는 메모지를 압수했다. 그때 압수된 명단 쪽지 때문에 북촌 청년들은 결국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 뒤로부터 경찰이 자주 마을에 나타나 수배청년들의 소재를 밝히라고 가족이나 친지들을 닦달하는 바람에 죄가 있든 없든 경찰이 나타나면 마을 주민들은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미군정은 1947년 5월 17일부터 미소 공동위원회가 속개되자 이 기간에는 정치적 집회를 일절 금지하는 행정명령 제3호를 발포했다가 비난이 일자 이를 해제했다. 이를 전후해서 제주도에서 마을마다 삐라 부착과 무허가 집회가 성행했다.
1947년 8월 13일 오전 11시께, 경찰은 순찰 도중 북촌리에서 삐라를 붙이던 사람들이 달아나자 뒤쫓으면서 총격을 가했다. 이 발포로 10대소녀 장윤수를 비롯해 여자 2명과 남자 1명 등 주민 3이 총상을 입었다. 이에 흥분한 한 소녀가 사이렌을 울려 마을 주민들을 집결시키고, 경찰과 대항할 것을 결의했다. 때마침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 김병댁 순경 등 경찰관 2명이 붙잡혀 집단폭행을 당했다. 북촌 주민들은 이에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지 마을에서 3키로 가량 떨어진 함덕지서에 찾아가 항의시위를 벌였다. 함덕지서에서는 지서 지붕에 기관총을 장착, 공포를 쏘면서 시위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북촌리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로 북촌 마을은 경찰의 집중적인 수색을 받았다. 특히 1948년 6월 16일에는 북촌 포구에 피항한 배를 조사하던 중 함께 탔던 경찰관 2명을 살해했다.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청년들은 수배를 받아 일찍부터 피신생활에 들어갔다. 입산시기도 다른 마을보다 빨랐다. 1948년 12월 16일에는 이들 입산 청년들이 체포되어 9연대에 의해 처음으로 집단학살 당한다.
1949년 1월 17일에는 해안마을인 조천면 북촌리에서 가장 비극적인 세칭 '북촌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발단은 이날 아침 세화 주둔 2연대 3대대 중대일부 병력이 대대본부가 있던 함덕으로 가던 도중에 북촌마을 어귀 고갯길에서 게릴라의 기습을 받아 군인 2명이 숨지면서 시작되었다. 이날 오전 11시께 2개 소대쯤 되는 무장군인이 '공비들과 내통했'는 이유를 들이대며 북촌마을을 포위, 300여 동의 가옥을 모두 불태우고, 주민 1천여 명을 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시킨 후 차례로 인근 밭에 끌고 가 총살했다. 이 양민사살극은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상급지휘관의 중지명령으로 일단 끝났지만, 그 다음 날 함덕으로 소개된 주민 일부가 다시 처형됐다. 결국 이틀 새 북촌 주민 400명 가량이 억울하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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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화를 떠나 비무장지대를 걸어 부산까지 내려간 다음 일본으로 건너가 오키나와까지 두 달간을 걸으며 사색하고 또 사색했다. 이 유엔사해체를 위한 걷기명상은 나에게 한국과 일본, 제주와 오키나와를 세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었다.
이 여행의 끝은 공교롭게도 감옥이었다. 유엔사해체가 북한의 주장이므로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것이 제일 비중 있는 혐의 중 하나였다. 보석으로 풀려난 뒤 최후진술을 쓰며 나는 나를 옭아 맨 국가보안법에 대해 또다시 여의도에서 고성까지 삼보일배 명상을 했다. 그러다가 빨갱이 사냥의 뿌리가 제주 4·3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무엇인가를 찾아 자꾸 제주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기행문은 세계체계를 쫓아 제주와 오키나와를 횡단하였다. 한 지역의 수직적 시간배치가 아니라 수평적 횡단을 통해 두 지역이 어떻게 세계체계를 만들어갔는지 그 과정을 쫓아 여행한다
이시우
도서관에 왔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섬들에 대한 아픈 역사를 담은 책. 중간 중간 펴서 읽다가 넘 숙연해졌다. 이런 작업을 하는 분들 존경한다. 그제 제주로 나오면서 길을 잘못 들어 북촌리를 거쳐 왔는데, 눈에 보이는 제주가 다가 아닌 제주. 제주에 오면 반나절은 도서관에서 이런 책들을 읽으며 보내는 것도 진정 제주를 좋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