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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평점 :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 느낌에서 오는 찝찝함은 아무리 씻어도 씻어지지 않게 마련인데, 김경욱의 소설은 그와는 조금 달랐다. 아주말끔히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형태는 알 수 있는 느낌, 그것.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더럽지는 않는 그 중간의 모호함에서 느껴지는 타오르는 조금 어두운 불씨 정도. 그게 김경욱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나의 느낌이다.
사실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대개 한국소설은 잘 읽지 않게 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그건 아마 가요를 잘 듣지 않는 이치와 비슷하다. 가사에서 느껴져오는 진한 여운에 노래를 잘 듣지 못하게 됨은 물론 너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어려워 손놓아버리는 때. 그리고 대개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확연이 들어오는 텍스트에 편안하면서도 이내 그 알기쉬운 글자안에, 그 글들이 한데 뭉쳐져서 폭발하게 되는 의미를 찾으려고 꽤나 노력하면서 읽게 되기 때문에,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였을텐데 오랜만에 읽게 되는 한국소설은 이래서 진지하구나, 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보게 된다.
처음 접하는 느낌, 첫인상이 아마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물론 어느때고 편견은 깨지게 마련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시작되는 첫 단편은 으,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역시나 표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음침함에 지레 소름이 끼치곤 했다. 그리고 좀 나아지겠지, 했던 두 번째 단편 역시나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무서울 것만 같은 영화를 실눈 뜨고 보는 느낌, 그리고는 찝찝해져오는 기분이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서 영화를 중간에서 보지 않는 그 때와 같았다. 나는 그 순간 책장을 덮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며칠 뒤에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에 찬 행동이었다.
다시 읽게 된 김경욱의 책은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조금은 답답하지 않게 다가왔다. 그저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충격적이어서 신선하고 음침해서 조금은 씁슬한 미소를 머금고 보게될 수 있을 정도였달까. 그만큼 그는 냉철했다. 그리고 객관적이었지만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내게 각인시키기까지는 충분했다. 신선해서, 그리고 처음이어서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단편들이 독자들에게 아주 깊은 곳까지 스며들 수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 그렇다. 그는 빠르게는 아니고, 물이 서서히 리트머스 종이에 닿아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를 분별할 수 있도록 천천히 스며든다. 조금은 걸끄러워서 그 경계를 왔다갔다하게 하지만 처음 접해본 김경욱의 글은 내게 아마도 파란색을 보여주었다. 산성의 느낌을 하고 스며들어온 그에 대한 느낌이 좋다고 싫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 다음 글도 기대가 되는 걸 보면 파란색의 산성의 느낌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독히 끝까지 어떠한 일들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장편 소설과 달리, 단편에서 느낄 수 있는 짧고 강한 힘은 그의 글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그의 장편 소설도 기대해본다, 얼만큼 클라이막스와 전조를 오가는 탄성을 느끼게 해줄 것인지 짐짓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