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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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읽다보면 대개, 작가만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하기 이전에 나는 이 책을 '김연수'라는 작가 하나만 보고 읽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김연수 작가에게 빠져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지만 나는 김연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아직도 읽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선뜻 집어들게 만든 이유는 김연수 작가의 기사를 보다가 줄리안 반스의 <플로베르에 대한 앵무새>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고 그 책을 읽어버렸고 나는 줄리안 반스에게 빠져버렸다. 어떠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나는 줄리안 반스에게서 김연수를 투영해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여지없이 나는 그를 줄리안 반스에 비견해보았다는 것에 조금도 후회가 없었다. 

여행을 하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그 모든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단지, 그 이미지만을 기억하게 되거나 찍어온 사진들을 보며 없던 기억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가장 기억하기 쉬운, 아니 자세하게 기억하고 싶다면 글을 써보자. 글 안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있으나 말보다 더 아쉬운 그 애틋함이 새겨질 때도 있으니까. 작가 김연수가 여행을 다니며, 큰 의미가 있는 '국경'을 넘나들며 기록한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내가 만나지도 않았던 사람을 아주 가까이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들만의 오롯이 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그 시간, 그 공간에서의 느낌을 제대로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흔히 보던 여행기는 아니었다. 여행 에세이라는 책들을 몇 보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작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여행지의 추억을 말하고 있었다. 본 것, 느낀 것, 들은 것들을 자기 위주로 써내려가고 있는 그들의 책과 이 책을 비교해보자면 한치의 오차도 없다. 그야말로 에세이니까. 하지만 이 책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김연수 자신의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그들을 위해 노래하고 있다는 느낌에서였다. 이런저런, 내가 모르는, 김연수가 만났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어쩌면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대리만족보다는 차원이 조금 높은 이야기로써 내가 느끼는 그 모든 것. 

마지막으로 작가 '이상'이 죽을 당시를 기억해보고 추억해보고 그리고 추모해보고자 가게 된 일본으로의 여행을 읽으면서 나는 당연히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떠올렸다. 감히 오마주라 부르기도 뭐하고, 비슷하다라는 말을 하는 게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그런 느낌을 받은 것에는 주저함이 없다. 여행에는 목적이 있으나 없으나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렇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여행에 그 가치가 더 높은 것 같다.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던 그 일본 여행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우리에겐 오직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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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이야기 - IQ 76, 인생의 진정한 로또를 찾아낸 행운아
퍼트리샤 우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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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독하게도 아름다운 책을 읽은 느낌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아주 비슷한 이 느낌. 페리, 난 그를 가장 친구인 키스가 부르는 방식인 페어라 부르고 싶다. 페어는 서른을 넘긴 나이, 어린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정신지체라는 이름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 아이큐 70을 넘은 76이므로 페어는 정신지체가 아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페어, 어렸을 때부터 그의 엄마 루이즈는 페어를 못 키우겠다며 할머니에게 맡겨버렸고, 죽을 줄만 알았던 아빠는 돈을 훔치고 달아나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페어는 불행하지 않다. 내가 봐도 너무 부러운 할머니가 곁에 있으니까.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도 어린 시절을 함께 했으니까. 

매일같이 복권을 사고, 할머니와 함께 숫자를 맞춰보고 홀스테드 용품점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보통예금과 당좌예금을 나누어, 할머니가 말씀해주신대로 반반씩 넣어둔다. 그리고 보통예금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조언을 끔찍하게 지키고 있는 페어. 할머니는 모르는 게 없다. 그리고 사전을 테이블위에 두고 할머니와 함께 외운다. 단어를 배워가면서 a에서 c로 그리고 결국에는 마지막 알파벳인 z까지 다 외워버리는 그 날이 오겠지. 그러던 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페어만을 남겨둔 채.

페어는 너무 슬펐지만 그가 견뎌내는 모습이 나에게는 더 슬펐다. 별일이 없었던 듯이 다시 또다시 그렇게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페어의 모습이 슬펐다. 그러던 날, 신문에서 보게 된, 당첨금 1200만 달러짜리 복권 당첨의 주인공이 페어 자신인 것을 알아버렸다. 페어는 부자가 되어버렸다. 가장 친한 친구 키스, 사랑하는 여자인 체리, 홀스테드 용품의 게리. 그렇게 주변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연락도 없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페어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들이 맡아야 하는 불안감에 떨던 가족들이 하루에도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수표를 써달라고 하고 그리고 돈을 빼낼 궁리만 한다. 페어의 삶이 갑자기 복잡한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페어는 부자가 되어서 할머니와 함께 복권에 당첨되면 할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면서 행복을 느낀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해요"라는 말을 하던 페어. 그리고 가족들이 원하는 건 돈이라는 것을 알자 그 돈을 모두 가족에게 줘버린다. 페어는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이 있는 보통예금이 있었고 그리고 홀스테드 용품에서 달마다 받고 있는 월급이 있다. 그것만으로 페어는 충분했다. 그리고 키스와 체리와 게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키스마저도 할머니처럼 죽어버렸다. 좋아했던 여자, 체리. 체리와 키스는 사랑을 했고 그래서 페어는 슬펐다. 하지만 키스가 떠난 후, 키스가 좋아했던 페어도 좋아했던 체리와 함께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저런 내용을 떠나서 난 이 작가가 글을 써내는 게 마음에 든다. 짤막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생각이나 느낌은 무한한 것이 되어버린 그 느낌. 아주 좋다, 조나단 사프란 포어가 글을 써내는 것과 비슷하다. 전체적인 이야기보다 순간의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그것을 느낄 것이며, 그 중 하나도 나이기에 느끼고 이 책이 좋다. 작가인 퍼트리샤 우드가 좋아져버린 이 책. 오랜만에 너무 좋아하는 책을 읽은 이 느낌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p.442
진실은 여러 가지다. 때로 진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믿기로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끔은 진짜다. 에흐트다. 정말이다. 가끔은 그걸 말하면 진실이 된다. 나는 느리지만, 이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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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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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나의 책읽기는 결국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에 남는 게 없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의 공허함만이 가득해져버렸다는 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아닌 페미니스트이다. 특히나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산다는 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고 나도 느끼고 있지만, 아직도 사소한 것들에서 느끼게 되는 차이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흐르며 느껴지는 건, 여자여서 피해를 본다는 느낌이 아닌 여자니까 이렇게 대우를 받는거야, 라는 합리화가 돌아오는 때가 가끔 있기도 하다. 가령 여자와 남자 사이의 차이점은 명확한 것이고 그로 인해서 부당한 대우는 말이 되지 않겠지만, 차이가 있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결과까지 비난하고 무조건 떼들어 따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덴의 악녀>.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페이 웰던의 소설이지만 유럽 전역에서는 꽤나 유명한 책인가보다. 누가보아도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루스라는 여자의 이야기. 하지만 계속해서 시점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는 탓에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 조차도 작가가 의도했던 거라 여겨질만큼. 루스는 루스가 아니었다. 폴리 패치, 그리고 마를린 헌터 등 이리저리 이름을 바꾸어 가며 살아가는 루스는 어쩌면 내가 될 수 있었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 루스는 독립적인 부부생활을 원하던 남편 보보의 외도, 그리고 그 외도를 일정부분 합의하고 묵인하고 있었지만, "악녀"라 소리치며 나가는 보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더 매력적이고 지적인 작가 메리 피셔에게로 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약간의 자신감도 없는 것 같은 루스는 그 여자를 매력적이라고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아내를 버리고 떠난 보보에게, 그리고 그 매력적인 여자를 복수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무서운 복수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이 책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복수를 어떻게 하려는건지, 남편이 떠나버리고 그 남편을 빼앗은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느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의 무서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루스의 복수의 과정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왜 루스가 이렇게밖에 나올 수 없는지에 대한 이해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복수를 하지 않고 그저 힘든 나날을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갑자기 더 좋은 남편이나 좋은 직장, 재산을 불려가며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스는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외모로부터 시작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가기만 한다. 나로서는 100% 이해가지 않는 것이지만, 어쨌든 루스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다. 행복은 어차피 자기만 알 수 있는 것이며 누가 뭐라 해도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니까.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아까도 말했듯이 허무함이다. 지나치게 루스만을 동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메리 피셔가 더 많이 불쌍해보이고 힘들어보이고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루스의 마지막 한마디가 나를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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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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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자신을 속이며 살다보면 나중에는 내 생각이 뭔지,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도 헛갈리게 되지 않을까. (p.261)

약 350개의 밥알 위에 올려진 생선들을 보면서 이내 입 안으로 털어넣는다. 간장은 밥알에 듬뿍, 그리고 젓가락으로 뭉개져 떨어뜨린 밥알들도 다시 집어먹으며 그렇게 초밥을 먹어본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초밥이라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초밥에 대해 알려고 들지는 않았을까.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가장 모르는 것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운동복부터 제대로 되어 있어야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운동, 어차피 땀 흘릴건데 집에서 굴러다니던 무릎 다 늘어난 바지나, 티는 색이 바랜 그런 것으로 입고 가야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운동을 해도, 그리고 하물며 잠깐 슈퍼에 가더라도 최소한의 예의와 나를 위한, 나를 보여주는 그것에 대한 자신감을 위해 입는다. 음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리사라는 직업의 안효주의 입에서 나온 이 책은 모든 글들은, 그의 진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한다.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부터 노량진 시장에 가서 같은 가격에서 최상의 재료들을 찾느라 노력하는 모습, 음식을 내는 요리사의 복장부터 초밥을 만들기 위한 도구들까지 하나하나 고심하며 준비하고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 왜 사람이 성공하는 지 알 수 있달까.

사실, 이 책은 초밥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을 알 수 는 있지만 전문 연구서처럼 초밥에 대한 상세하고 깊은 지식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이 다시끔 스친다.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작가를 보여준다. 자기 인생의 증거라는 초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인생의 증거를 통해서 인생을 보여준다. 안효주를 보여준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라는 고민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건 언제나 '나'라는 답 하나로 돌아온다. 세상 사람이 다 그래도 나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이기적이며 당연한 꿈이다. 안효주는 어쩌면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이 초밥을 만드는, 일식을 요리하는 요리사로서의 길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인생의 증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는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가.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거나, 알아도 제대로 몰랐던 그 초밥에 대한 기본 상식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음식도 먹는 방법이 다 제각각인데 하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초밥에 대한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서 초밥 바에 앉아서 앞에 놓인 물수건으로 손을 가지런히 닦고, 엄지, 검지, 중지로 초밥 하나를 들어올리고 싶다. 그리고 생선의 끝에 간장을 조금 묻혀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맛을 음미하고 싶다. 

그 일이 어떠한 일이든 미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게 없다. 언제나 이러한 류의 글들을 읽으며 자극받는 나를 발견하고, 내일의 태양은 아마 어제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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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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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은 기회로 작가인 박범신을 만날 수 있었다. 공자가 말하는 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색, 모방, 경험의 길이 있는데 경험만이 나, 자신만을 의지해야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습관에 의한 경험, 그리고 의지 따위는 있겠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곳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촐라체를 향한 그러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내게 속삭여주었다.

CHOLATSE :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km, 남체 바자르 북동북 14km 지점에 위치한 6440미터 봉우리, 전 세계 젊은 클라이머들이 오르기를 열망하는 꿈의 빙벽.

왜 젊은이인가. 왜 이렇게 단정지어 놓았을까, 라는 의문이 비로소 풀리게 되었다.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박범신은 우리에게 불행하다고 말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해도 벌써 과거의 사람들이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며 새로운 일을 하려 해도 미리 이루어 놓은 과거의 것들이 우리를 조여올 것이라고. 어느새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와 같은 생각을 전에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Cinema paradiso>를 보면서의 일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야외의 큰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앉아서 영화를 보면서 웃고 떠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영화를 보려 하면 사전의 정보나 그리고 제한되어 있는 시스템 속에서 나는 나의 감정을 제약받는다. 하지만 그때라면 어땠을까. 어떤 영화인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채 그 열린 공간 속에서 나만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오로지 나의 진실된 모습일 것이다. 

촐라체, 그 빙벽에 서로 로프로 이어진 박상민과 하영교. 그들은 고요하여 정적마저 감도는 그 벼랑 끝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느낀다. 바람 하나 불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곳에서는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어떠한 방해물 없이 자신만을 위해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로프로 이어진 그 둘은 어느새 서로간의 소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저 산을 오르고, 험난한 그 곳을 극복해가면서 이루어내는 승리와 환희에 대한 이야기라고 착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 떠오르는 나의 생각은 그저 극복해내고 이루었다는 승리의 소리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얼마나 고독했을까, 힘들었을까 라는 대상인 몸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을 극복해내가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의미가 스며든다. 젊은이에게 던지는 한마디, 도전해라. 끊임없이 나를 자극했다. 떨어져 죽을 것만 같은 그 곳, 하지만 떨어져 죽을 수는 없다. 떨어져 죽을 수는 없지만 죽을 것만 같은 그 정도의 모험을 감행해라. 

시점을 이리저리 달리하며 전개해 나가는 글을 읽으면서, 박상민과 하영교, 그리고 저 멀리 베이스캠프를 지키고 홀로 앉아 있는 그 세 사람. 떠나오기 전 수많은 고통과 뒷일을 내던지고 그들이 돌아섰을 때,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어쩌면 도피처였을지도 모르는 그 길에서 세 사람은 만나고 그리고 그 자체가 모험이 되어버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가는 등정이 아니라 최소한의 장비로서 자기 몸의 감각에 의지해서만 오를 수 있는 알파인 등정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행하는 위대한 도전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바치는 최소한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나를 알았다고 외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를 알 것 같다고 또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른다. 아니, 어쩌면 평생 나를 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 생을 살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내 삶과 씨름하며 고뇌하며 그리고 깨우치는 그 때를 위해 사는 지도. 

나는 떠나련다. 과거의 나를 떠나려고 한다. 무지하고 안일했던 나를 떠나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서 기대를 하고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 싶다. 쉴새없이 움직이고 싶어졌고, 그리고 머릿속 뇌의 주름이 조금씩 더 자글자글해 질때까지 생각을 하고 싶어졌으며 그리고 나만의 촐라체, 내 존재에 대해 묻고 싶어졌다. 내 속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아니 언제부턴가 내 눈 바로 앞에서 어물쩡거리면서 자기를 봐달라고 했는데 짐짓 내가 무시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 촐라체를 눈앞에 두고 달려가려고 한다. 존재, 그 어두운 채 묻혀있는 보석을 이제 조금씩 캐내보려 한다.

 

p.51
밤은 이래서 좋다. 불빛과 불빛 사이에 아무런 절망적인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 따뜻한 착각.

p.226
모든 것은 유동적이지만 삼라만상과 과거 현재가 다 서로 얽혀 있으므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카르마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고통이야말로 '온갖 부정적인 카르마를 쓸어내는 빗자루'란 말도 그 원리와 맞닿아 있었다.

p.327
길은 결국 두 갈래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길은 경쟁에 가위눌리면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안락한 일상을 버릴지라도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상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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