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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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되는 책이에요,
삽화들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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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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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한 느낌에서 오는 미묘한 동질감은 어쩐지 모르게 편안하기만 하다. 어쩌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누구든 누구에게 말할 수 없을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때쯤 머릿속 한 공간에 넓게 펼쳐진 하얀색 종이 위에 떠올렸나 지웠다는 반복하곤 하는 자기만의 표현방식에 가끔은 소름끼치도록 이상하고 외설스럽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하는 등등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나만 알았으면 하는 그 까슬거리는 느낌을 탁, 하고 건드려 터뜨려버리는 작가의 이 책, 고구레빌라 연애소동.


조금은 제대로 말해보자면 어쩐지 모르게 일본소설 특유의 느낌에서 풍겨져 나오는 가벼움에 한 때는 취해있었다. 단순한 가벼움은 아니고,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데 그 안에서 발견해낼 수 있는 떨림에 요동쳤었던 때가 있었다. 또 한 때는 그에 너무 질려버려 일본소설이라면 다 제쳐버렸던 때도 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일본소설을 읽어보았다.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한없이 진지하고 어렵고 복잡한 것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이렇게 신선하게 자극해주는 가벼운 느낌에 희열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 누군가는 읽으면서, 아, 재미없다, 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저 주절거리며 풀어나가는 조그마한 에피소드 따위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잔인한 말을 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수준을 끌어높여 전개, 발단 등의 용어를 들먹여가며 차근히 더 높은 곳으로 쌓아 올려져 그 텍스트 안 하나하나에 서려 있는 그러한 소설을 읽다가 이 책을 읽었다면 아주 시시할 지도 모르지만. 딱 거기까지다. 모르지만, 긴장을 조금 풀어 그들이 살아나가고 있는 고구레 빌라에 내가 살고 있다면, 이라는 소설의 가장 최고치에 다다른 감정이입에 다가선다면 이 책은 풋, 소리가 나게끔 우습고 사랑스러울 지도 모른다.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책의 카피로 쓰여진 이 문장은 정말로 어쩌지도 못하게, 이 책을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이상하게 실눈을 뜨고 의심을 가지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볼 때, 그 때 그 틈 사이를 비짚고 나와서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라고 주절거린다면, 얼마나 우습기도 하고, 이해가 가기도 하는 그런 미묘한 심정이 떠오를까. 아마도 특유의 일본감성이라 말하고 싶다. 편견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일본소설을 볼 때마다 가지게 되는, 그러니까 일본의 감성소설을 읽을 때마다, 옴니버스같지만 조금씩 하나의 포인트를 가지고 이어져 나가는 이러한 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기분은 가볍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래서 손에서 놓지 하고 몸을 뉘어 쉬고 싶을 때, 아마 몸보다는 뇌가 한 템포 쉬고 싶을 때 가끔은 싸,하게 튀어오르는 그러한 자극제가 된다. 엄청 좋지는 않지만 싫어할 수는 없는 못생긴 사랑스러움이랄까.



고구레빌라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속에 관찰자로 들어가, 어떻게 보면 훔쳐보기 식의 들여다봄으로 인해 그들의 사생활, 개인적이라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을만한 그들의 집 앞 마당에 망원경을 가지고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 또다시 솔직해지자, 라는 생각뿐이다. 솔직해서, 하지 않아야 될 행동이나 말을 해서 원하지 않는대로 풀려나갈지라도, 조금은 감수할 수 있다면 아, 나도 저들처럼 솔직해져야지. 하고 싶은 말을 여과없이 쏟아내면 나쁜 일이 될 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누군가에게 솔직해지자. 나로써, 나 자제만으로 솔직한 것은 언제나 하고 있는 일일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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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잔혹극]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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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인이 일어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한 집약은 얼마나 될까, 게다가 이 글이 읽혀질 때의 복잡함에 대한 발견에 대한 답은 언제쯤 이해가 될 수 있을까.



앞의 문장이 하고 있는 말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

르 겠다. 이유는 생각의 복잡함이 어떻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의 뱉어냄으로 인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하게끔 만들고 있을테니까.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 전 문장도 마찬가지일 지 모른다. 아마 누군가가 하고 싶은 말을, 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단순히 활자를 읽을 수 있다는 그 자체로 모두 이해를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 자체로써 존경받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하 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전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에 이르러서, 그러한 장애(이는 어떠한 방해물로 인하여 불편하게 만들어진 뜻 정도를 말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사용된 표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얼마나 참혹할 지 느낄 수는 없지만 생각하고 또 뇌의 시선이 그 언저리 즈음에 미칠 수는 있을 것을 말한다. 어찌보면 ‘221B’에서 느껴지는 추리의 황홀이 첫 장부터 빠른 속도로 펼쳐질 거라 생각을 했지만 그런 것 따위는 뛰어넘는다해도, 그에 못 미친다해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우아하게 양파를 아주 얇게 한 껍질씩 벗겨나가는 그러한 아릿함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러저러한 시선으로 옮겨가다

가 또 전지적 시점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한 글쓰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보면 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찌보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시선에 계속해서 방해받고 있으며,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수로의 방향을 틀어 끼워맞춘 듯한 파이프처럼 삐그덕대게 만들곤 한다. 이 책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좋았다는 표현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조차도 이 책은 그랬어야만 했다. 어떠한 것을 정확히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왜 이러는 지, 어떻게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지에 대한 답은 모두 작가의 시점에 달려있었다고 생각을 했다. 조금씩 어긋나면서 질척거리는 느낌 등을 조금씩 타협점을 찾으며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평행선처럼 끝내 못만날 것이 아니라 벌어져가는 각도의 시작점은 언제나 한 점에서 만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면 쉽게 풀릴 것만도 같았다. 그만큰 작가는 조금씩 다시 과거로 한 발짝씩 되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게 그거야. 죽였다고, 알아듣겠어? 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글 자를 읽을 수 없음에 대한 슬픔. 어쩌면 좌절. 단순히 어떠한 능력이 없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테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자기 절제로 극복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생각해내서 단정지을 수 있으려면 그 이외의 조건은 모두 다 같아야만 한다. 비교를 할 수 있을 대조군을 두고 나서 어떠한 한 가지 특성의 다름을 비교실험해볼 수 있는, 동일한 조건. 하지만 출발선이 달랐고, 그래서 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혹자는 그런 것을 두고 자기 합리화라 말할 지도 모르며, 어쩌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꾸며낸, 하지 못할 것에 대해 미리 두려움을 가지고 미리 진을 쳐둔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아직까지는. 유니스 파치먼은 이론적으로 가능해진 자기 극복을, 출발선부터 틀어져버린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열등감과 좌절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그 이전의 모든 시간과 감정, 모든 이유들

은 되돌려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을 것이 없다. 우연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수백만 개의 원인이나 가능성이 존재하는 데 모두들, 원하는 대로 생각해버리니까 그 가능성은 1로 좁혀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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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명품 - 옛사람들의 일상과 예술에서 명품을 만나다
최웅철 지음 / Storyblossom(스토리블라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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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름답다’ 라는 말의 어원이 ‘내가 아는 것에 가까운 것이다’라니!





작가의 인트로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의 편견과 선입견이 고조되어 그렇게 큰 기대는 되지 않았지만, 점점 뒤로 가면서 느껴지는 알지 못했던 사실의 향연에 지극히 몰입되기 시작했고, 그 느낌은 책을 덮을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전혀 어색하지 않아, 흐르듯 넘겨지는 속도의 깊이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으며, 잊고 있었던, 잊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가끔은 주변에 널려진 사물을 둘러보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구에 의해 어떤 생각으로 생겨났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흔한 것들이었다. 공장에서 갓 찍어내 거리를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복제품의 열거에 싫증이 났었다. 조금은 독특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과는 다른 것에 목말라 할 때쯤 다시 눈을 되돌리게 되는 건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것, 작가가 말하는 우리의 ‘생활명품’이라 불리어도 아깝지 않을 그러한 전통적인 것들이었다. 한껏 부풀려진 마케팅에 속아 외국의 제품을 써보기도 하지만, 이내 정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옛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단순히 우리나라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 매력, 말로 표현해내기는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것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지는 않는다. 좋지 않은 점을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깊이는 아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솜씨 좋은 음식을 만들어내셨던 어머니에 대한 향수,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조금은 절제되어 있는 슬픔의 미학이 더 와닿았다. 아마, 음식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묘미를 자극함과 동시에 끝에 둠으로써 점점 완성해나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조금은 아련하고, 더 아우러지는 느낌에 기분 좋은 울림을 간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소개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보았으면 싶다, 라는 것이었는데 그 말은 정말 적절하다.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져 읽혀진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숨어있는 진실 정도를 조금은 손쉽게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해진다. 읽혀져, 조금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은 정말 확실한 그러한 기대.





전반에 걸쳐 공예, 회화, 건축, 음식에 대해 학교 때 배울 수 있었을 법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 초반에도 말했듯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렇게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지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옹기의 표면을 통해서 숨을 쉬어 그로 인해 우리나라의 발효음식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또, 지나치게 미니멀한 사방탁자를 본 순간 탄성을 내질렀다, 믿을 수 없게도. 기회가 되어 가보았던 ‘소쇄원’ 대나무의 향기에 취해 그 내음만 느끼며 걸어돌아온 그 장소가 은둔해 살았던 양산보의 이상향의 꿈을 이루고자 했었던 곳인지도, 아주 흔해 궁금하지 않았던 ‘전주비빔밥’이 왜 전주여야 하는지 등, 이제껏 몰랐던 것에 대한 것을 알아갈 때마다 조금씩 마음속 안으로 얕게 흩어져 나오는 탄성은 누구든 이 책을 꼭 한 번은 읽어봤으면 하는 욕심이 들게 만들었다. 아주 일각에 불과한 이 단어의 나열으로는 이 책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쯤은 옛것에 기대어, 이제껏 그 장인정신을 가지고 지켜져 나가는 것에 대해 무관심했었고, 아마 이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한동안은 그러했을 지도 모른다. 왜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장인들이 사라져가는 옛것에 그렇게 목메어, 짙은 고집을 가지고 이어나가려 하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큰 공감이 일었다. 그래서 그게 누구든, 얼마나 지나쳐가고 있는지,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달랠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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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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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 느낌에서 오는 찝찝함은 아무리 씻어도 씻어지지 않게 마련인데, 김경욱의 소설은 그와는 조금 달랐다. 아주말끔히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형태는 알 수 있는 느낌, 그것.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더럽지는 않는 그 중간의 모호함에서 느껴지는 타오르는 조금 어두운 불씨 정도. 그게 김경욱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나의 느낌이다.  


사실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대개 한국소설은 잘 읽지 않게 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그건 아마 가요를 잘 듣지 않는 이치와 비슷하다. 가사에서 느껴져오는 진한 여운에 노래를 잘 듣지 못하게 됨은 물론 너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어려워 손놓아버리는 때. 그리고 대개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확연이 들어오는 텍스트에 편안하면서도 이내 그 알기쉬운 글자안에, 그 글들이 한데 뭉쳐져서 폭발하게 되는 의미를 찾으려고 꽤나 노력하면서 읽게 되기 때문에,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였을텐데 오랜만에 읽게 되는 한국소설은 이래서 진지하구나, 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보게 된다.

처음 접하는 느낌, 첫인상이 아마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물론 어느때고 편견은 깨지게 마련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시작되는 첫 단편은 으,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역시나 표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음침함에 지레 소름이 끼치곤 했다. 그리고 좀 나아지겠지, 했던 두 번째 단편 역시나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무서울 것만 같은 영화를 실눈 뜨고 보는 느낌, 그리고는 찝찝해져오는 기분이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서 영화를 중간에서 보지 않는 그 때와 같았다. 나는 그 순간 책장을 덮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며칠 뒤에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에 찬 행동이었다.


다시 읽게 된 김경욱의 책은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조금은 답답하지 않게 다가왔다. 그저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충격적이어서 신선하고 음침해서 조금은 씁슬한 미소를 머금고 보게될 수 있을 정도였달까. 그만큼 그는 냉철했다. 그리고 객관적이었지만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내게 각인시키기까지는 충분했다. 신선해서, 그리고 처음이어서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단편들이 독자들에게 아주 깊은 곳까지 스며들 수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 그렇다. 그는 빠르게는 아니고, 물이 서서히 리트머스 종이에 닿아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를 분별할 수 있도록 천천히 스며든다. 조금은 걸끄러워서 그 경계를 왔다갔다하게 하지만 처음 접해본 김경욱의 글은 내게 아마도 파란색을 보여주었다. 산성의 느낌을 하고 스며들어온 그에 대한 느낌이 좋다고 싫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 다음 글도 기대가 되는 걸 보면 파란색의 산성의 느낌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독히 끝까지 어떠한 일들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장편 소설과 달리, 단편에서 느낄 수 있는 짧고 강한 힘은 그의 글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그의 장편 소설도 기대해본다, 얼만큼 클라이막스와 전조를 오가는 탄성을 느끼게 해줄 것인지 짐짓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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