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도스또예프스끼는 뛰어넘기 어려운 유혹이다.
'열린책들'에서 전집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이 매혹적인 책을 구입해야지 하고
벼르고 살면서, 이제는 오래되어 책먼지가 많이 이는 범우사판 단행본 말고,
전집으로 나오는 '지하 생활자의 수기' 나 '미성년'등의 작품들을 읽으려 작정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이 스물 다섯 권인가 하는 전집으로 나왔을 때는 수중에 돈 한 푼없는
빈털털이 신세여서 표지색깔이 왜 이 모양이야 하며 건마른 투정만 냅다 하고 말았다.
겨우 올해 들어서야 빨간 얼굴의 도스또예프스끼를 내 서가에 올려놓았다.
사고 나서야 니체가 심취했다는 사실도 알았고,
읽고자 하는 책의 제목을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바꿔 달았음도 알게 되었다.
좋은 책이라서 무한정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독자가 외면하면,
재고의 신세와 절판의 운명을 맞게 된다는 사실이다.
가끔 늦게 인연이 닿아서 알게 된 책들이 위와 같은 길을 가 버린 것을 알고나면
너무나 아쉬워서 그 책들에게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옛말이고, 여름과 겨울이 진짜 독서의 계절이다.
추운데 코 얼리며 나다니지 말고 호흡 긴 책을 읽어보자는 소생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