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년 전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맞은 저의 작은 아버지.

그 때만 해도 많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시고 잠간 인천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도시지역 근무연한이 차서 이 지역 밖으로 발령을 받은 직후

인천직할시로 행정구역이 바뀌게 되었고, 해서 소속 교육위원회가 경기도다 보니

이후 섬이나 휴전선 인근지역을 포함한 경기도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전근을 다니며

교직생활을 하셨습니다.

 

지금과 달리 지역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려서 부부교사나 아주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생활이나 교육여건이 좋은 대도시나 도청소재지의 도시로 전출이 불가능하여서

가뭄에 콩나듯 생기는 교사 맞이동이나 기대하며 교사생활을 하셨으니

주변머리 없으신 작은 아버지 부부는 결혼생활을 거의 주말부부로만 보내셨지요.

작은 어머니는 그저 사랑방 손님 대하듯 남편과 생활하신 셈이었구요.

 

평소에도 잔소리가 많은 우리 작은 아버지,

잠간 집에 오면 자녀들과 어머니에게 하실 말씀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였지만

그 말을 듣는 가족들은 그저 고역일 뿐이여서
휴일 하루만 지나면, 방학만 지나면 된다...

그러면 남편 잔소리, 아빠 잔소리에서 벗어나니까 참아야지 하였지요.


그런데 작년 연말에 또 다른 사촌 여동생 결혼식이 남도지방에서 있어서

주말에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면서 어머니의 최근 근황을 들어보니 부부생활이 매우 심각하더군요.
정년퇴직하면 제 2의 신혼생활까지는 아니지만 여유있는 노년생활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사사건건 서로 충돌하여

작은 어머니는 애들이 아니면 당장 이혼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평생 자신의 직업에만 충실했던 작은아버지는 어떤 의미로는 그 가정의 손님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던 분이 하루아침에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전직 방 주인 작은 어머니는...

여기까지가 정년이나 명퇴로 하루 아침에 방이 전용공간이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쯤 되겠군요.

 

지난 설날 연휴에 앞서 이야기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근무처가 지방으로 정해지고나서 이사를 가냐마냐로 고민하는 사이 몇년이 지나가고,

막상 이제는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전학문제로 이사를 포기한 상태에 있는데

거리상 출퇴근하기가 쉽지 않다보니 주말부부로 벌써 10년을 넘게 살고 있습니다.

비록 천성이 가정적이다보니 주중에는 전화로 가족들의 대소사를 이야기 한다지만

주말에 만난 가족들에겐 어느 새 잔소리꾼이 다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날도 저를 만나러 나온다니까 자녀들 얼굴에서 속박에서 벗어난 희색을 느끼는 게 보였다나요.

 

그런데 요즘 본 기사중 유난히 기러기 가장 이야기에 여러 생각이 듭니다.

부부사이가 유난히 좋으면 잉꼬부부라 하는데

어쩌다 잉꼬에서 외기러기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우리들은 사랑방같은 이 세상에 잠간 손님으로만 왔다 가는 것이 아닌지 정말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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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관계라는 게... 어찌 점점 이렇게 흘러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결혼이나 가정에 대해서 그간의 생각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중인데
역시나 접하는 정보들은 비관론으로 한표를 던지게 하네요.
전 저희 엄마, 아빠 보면 평생 뭐 이뤄내신 건 없지만
그 많은 평지풍파가운데서도 여지껏 화목하게 부부로 사신다는 게
참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프레이야 2007-03-0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노년의 부부가 가방을 같이 들고 구부정한 등을 하고 걸어가는 뒷모습!
정말 인상적인 포착입니다. 사랑방손님은 어느정도 거리가 느껴지면서도 귀한 손님이지요. 부부간에 서로 그런 생각으로 대해주면 좋지않을까 싶어요. 작은어머님 마음이 참 불편하시겠단 생각은 듭니다. 체셔고양이님 말씀처럼 부부간에 화목하게 존경하며 사는 모습이 최고의 교육일거란 생각도 드네요. 조용한 아침,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이 병이네요. 그냥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데 말이에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07-03-09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3-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니르바님 글은 참...!^^
부부로 만나서 한 평생 사는 게 쉽지 않겠죠. 서로 맞추며 살아야 하는데, 내 생각 내 방식 못 버리면서 상대방에게 맞추며 살라고 하면 쉽겠나요?
제목도 사진도 글도 참 인상적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달팽이 2007-03-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방손님, 그렇군요..

혜덕화 2007-03-0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면 줄여야할 것이 <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든 사람치고 말 적은 사람을 보기는 정말 어렵더군요. 부부간에도 부자간에도 말을 줄이고 행동으로 보인다면 세상이 훨씬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니르바나 2007-03-10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그리고 보니 최근에 상영된 가족에 대한 한국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해체과정에 있는 가족의 복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이전에도 이런 영화가 없지는 않았지만요. 지난 세기 한국사회 산업화 과정에서 보여준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변화만큼 핵가족내 구성원들의 분화도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급격한 변화에는 꼭 반동이 있게 마련이지요. 무엇이 문제인가를 고민하다보면 해결방안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체셔님의 비관론을 싸안아 줄 만한 롤 모델이신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 셈입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끄신 두 분처럼 체셔님께 안성맞춤인 행복파트너의 등장을 기대하면서...

니르바나 2007-03-10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안녕하세요.^^
30년쯤 전에 포착된 제 눈동자 스냅사진을 한 장 현상하면 이렇습니다.
장소는 역곡역.
황혼에 물들은 하늘 배경 속으로
두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가던 장엄하기 까지했던 연로하신 부부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저희 작은아버지 부부는
결혼식 장면외에는 손 잡은 모습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손 잡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 마음이 굳기 전에
연애시절 표정이 많던 사랑의 손도 경화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부부의 손길이 마음의 사랑길로 연결되다보면
행복한 부부생활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니르바나 2007-03-10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호님, 우선 이 말씀만 드릴께요.
요즘 찜해 둔 것이 전혀 전혀 없습니다. ㅎㅎ

니르바나 2007-03-10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이 글을 읽어주시니 페이퍼를 쓴 보람이 확 살아나네요. ㅎㅎ
말씀하신 것 처럼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에는
네생각 네방식에 맞추어 살겠다고 하다가
점점 내생각 내방식을 찾으며 인간의 본색을 드러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제 서재 문패에 내 걸었잖아요.
" 나는 없다."

니르바나 2007-03-10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은 항상 역지사지하며 사시니까 일절 상관없는 이야기겠지요.
작은 아버지도 달팽이님처럼 열심히 수행하며 사셨다면 어땠을까
잠시 가정해 보았습니다.^^

니르바나 2007-03-1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안녕하세요.^^
말씀하신대로 이심전심으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마땅히 그리 되어야겠지요.
그러나 그 단계까지 가려면
먼저 꾸준히 몸과 마음을 수행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많은 필부들은 엄두를 못내고 이럭저럭 살면서 말만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정작 이 때가 되면 자신이 하는 말을 콘트롤하지 못하는 것이 보기에 안타까워요.

2007-03-10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7-03-1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님,
개인적으로 포스가 강하게 느끼신다구요.
이를 어째지요.
저도 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요.
우야든동 알라딘서재에서 저에게 관심 가져주시는 딱 한 분인
님에게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니까요.^^